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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가까이 죽음을 마주했을 때 - 자녀 잃은 부모의 희망 안내서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지음, 오혜련 옮김 / 샘솟는기쁨 / 2025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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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우리에게 수많은 가능성을 주고 있다. 죽음도 마찬가지다. 죽음은 생의 완성이자 졸업이며, 또 다른 출발을 위한 작별인사이고, 새로운 시작을 하기 전의 종결이다. 죽음은 위대한 변화다.’ 죽음은 삶의 변화만큼 다양하다. 우린 태어남을 알 수 없듯이 죽음을 예고할 수 없다. 죽음엔 상실과 고통이 따른다. 하지만 죽음은 남겨진 자들에 생의 소중함을 일깨워준다. 우린 죽음을 통해 삶에 다가선다. 인간 본성을 만나고 근원적인 질문에 답을 한다. 무엇을 위해 살아왔는가,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 인생에 던지는 메시지는 생의 시간만큼 유한하다. 하물며 아이의 죽음엔 어떤 의미가 존재하는가?
어린아이의 죽음은 거론하기 힘든 주제다. 죽음이란 노화를 연상하는 단어이기에 어린아이의 죽음은 마치 모든 생각의 흐름을 멈추고 단절시키는 충격을 가져온다. 하지만 우리 주변엔 알지 못하는 수많은 죽음이 일어나고 있다. 암, 불치병, 사고, 자살, 어린아이의 죽음은 가족들에게 씻기 어려운 고통과 상실감, 죄책감, 무기력, 절망을 안겨준다. 인간은 심리적 안정감을 통해 고통을 승화시키고 내면적 성장을 이끌어 새로운 희망을 받아들인다. 우린 타인의 아픔을 받아들이는 이들에 의해 성장한다. 공감으로부터 희망이 싹튼다. 위로의 말 한마디가 삶을 일으키고 곁을 허락하는 마음이 생명을 지켜나간다.
아이의 죽음 뒤엔 부모와 가족들의 상실과 애통이 뒤따른다. 저자는 너무 애통이 큰 나머지 자신을 추리지 못하고 실성하는 정도에 이른다면 이를 허락하라고 충고한다. 상실의 고통은 의사가 처방하는 진정제로 해결되지 않는다. 오히려 위기를 증폭시키며 수년 동안 죄책감과 무기력에 빠져들어 또 다른 병을 유발한다. 죽음은 저항하지 않고 마주해야한다. 아프고 고통스럽지만 인정하기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 특히 형제, 자매간의 죽음이라면 아이들에게 떠나는 형제의 모습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어린 아이는 죽음에 대한 생각이 다르다. 하지만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살아가야할 날에 대한 성찰을 위해 죽음에 대한 인식이 더욱 중요하다. 상실과 애통의 감정치유는 죽음을 대하는 필연적 조건이다.
인간은 외로운 존재다. 외로움을 감추기 위해 다양한 페르소나를 이용하지만 여전히 내면적 외로움을 감추지 못한다. 외로움은 죽음 앞에서 더욱 뚜렷하게 드러난다. 죽음과 마주하기 위해선 타인의 공감과 시선이 필요하다. 그들은 고통을 이해하고 있으며 생에 대한 이해가 특별하다. 또한 죽음이주는 메시지를 알고 있다. 죽음 앞에선 부모와 형제들에게 이들은 천사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묵묵히 곁을 지켜주며 고통을 이해하고 조용히 주변 일을 정리한다. 무엇보다 삶의 단순함과 경건함 그리고 생이 주는 감사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사랑은 타인을 보살피는 것이라는 실천적 의미는 생이 주는 가장 중요한 선물이자 신의 메시지와 동일하다.
죽음을 삶의 끝이라는 생각은 처절하리만치 고통스럽다. 죽음에 대하는 자세가 특별한 이유는 우리에겐 삶이 한번이듯이 죽음 또한 단 한번이기 때문이다. 본 책을 통해 아주 가까이 죽음을 느낄 수 있다. 저자 엘리자베스는 호스피스 운동의 선구자이자 죽음학의 효시로 죽음에 관한한 세계적인 사상가다. 그녀는 세계 각국을 돌며 불치병과 암, 에이즈, 사고등을 통해 죽음을 앞둔 이들에 위로와 위안을 가져다주었다. 저자는 수많은 상담과 편지를 통해 무너져가는 이들의 마음에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가슴 뭉클하고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우리에게 주어진 운명은 무엇일까? 무거운 주제를 솔직하고 담백하게 풀어나가는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희망 안내서로 교체된다. 죽음은 삶의 위대한 변화를 가져온다. 죽음을 이해하는 것은 삶의 기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