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시간 오후 4시
이주형 지음 / 모모북스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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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 갈수록 끝이 없을 것만 같은 시간도 언젠가는 종착지점에 이른다. 인생이 직선으로만 가지 않고 곡선으로 진행된다는 것을 아는 순간 세월의 무상함을 깨닫는다. 흐르는 강물처럼 유유히 살아왔지만 결국 거대한 바다로 집결한다. 특별할 것 없는 인생살이를 왜 이렇게 각박하게 살아가는지, 너와 나에 대한 구분과 특별함을 강조하는지, 자신을 대하는 것도 상대를 대하는 것도 복잡하고 힘들기만 하다. 우린 마음보다 빠르게 흘러가는 세상을 따라잡으려는 부질없는 욕망에 사로잡혀있다. 손에 쥔 것만이 인생이 아니다. 멈추면 보이는 것들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인생의 오후는 특별한 시간이다. 삶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오직 자신만이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한국사회에 새로운 트렌드중 하나가 노화에 대한 애찬이다. 다행히 현재 나이듦에 속한 인구는 과거세대에 비해 풍족한 삶을 유지하고 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현역으로 활동 중이고 다수는 저마다 삶에 대한 기대와 희망치를 올리고 있다. 덕분에 노인에 대한 가치도 재평가되고 있다. 그래서인지 늦은 나이란 없다는 말이 일상적인 언어가 되가는 것 같다. 하지만 과거 정체성에 갇힌 이들에게 세상은 여전히 만만치 않다. 마치 여러 세대가 혼돈하는 시대다. 사회적으로 다양한 요구가 봇물 터지듯이 일어나지만 누군가의 희생을 요구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누가 자신을 희생하려 하겠는가? 사회적 공감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지만 서로 자신이 원하는 것만 소리치고 있다.

 

대한민국엔 어른이 필요하다. 하지만 존경과 공감의 대상이 되는 어른이 사라져버렸다. 이제 모든 이들은 어떤 목표를 두고 살아야하는지 불안과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각자도생이란 말이 심심치 않게 흘러나온다. 누굴 믿고 의지해야하는가? 더욱이 몸과 마음이 스러져가는 중년엔 더욱 많은 위기들이 찾아온다. 건강에 대한 염려. 자녀에 대한 걱정, 노후에 대한 불안, 무엇보다 잘 살고 있는가에 대한 불안이 마음을 짓누른다. 이럴 때 삶에 대한 기울기가 기울어진다. 현재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강박은 끊임없는 요구를 강요한다. 잘 살아야한다. 행복해야한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인생은 곡선이다. 어디로 갈지를 정하는 것은 여전히 자신의 몫이다.

 

소소한 일상을 바로 보는 것은 삶에 감사하는 태도다. 어떻게 살아야하는가에 대한 근원적인 해결책일지도 모른다. 숨 쉬는 것에 대한 감사는 아파본 자만이 느낄 수 있는 생명에 대한 감사다. 자신이 가진 것에 대한 소중함을 깨닫는 다면 감사하지 않을 것이 하나도 없다. 현재를 살아간다는 것은 구체적이지만 단순하다. 알았던 세상을 제대로 바라보는 것이다. 지금껏 느꼈던 감정을 새롭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인생시간, 오후4시는 작가의 소소한 마음이 지극히 드러나 있다. 진한 향기가 묻어나는 커피에 대한 사랑을 통해 삶에 대한 풍성한 향기를 느낄 수 있다. 마치 라일락꽃처럼 은은한 향기가 글을 통해 살아난다.

 

우린 자신을 통해 세상을 만난다. 세상이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은 특정한 순간뿐이다. 어쩌면 인간의 생태가 자신이 원하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구성되어있는지도 모르겠다. 자신이 만든 퍼즐을 맞추어가며 소소한 일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결국 자신이 만들어가는 미래다. 누구에게나 황혼기가 있다. 빠른 성장이 있다면 느린 성숙이 있다. 저자의 말대로 하나를 추가하는 것이 성장이라면 성숙은 하나를 내려놓는 비움이다. 비워야 새로운 관계가 만들어진다. 자신을 만나는 것도 관계를 형성하는 것도 비움이 우선이다. 일상을 통해 만나는 수많은 생각들이 우리의 정체성을 형성하듯이 지금 떠오르는 생각은 미래를 구성한다. 인생 오후시간은 그래서 더욱 반갑다. 또한 작가만의 소소한 인생이야기가 너무 아름답고 그립다. 힘들 때마다 곁에 두고 읽고 싶은 책이다. 누구에게나 삶에 대한 같은 이유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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