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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직선이 아니다 - 암, 도전, 진화 그리고 삶과 죽음에 대한 매혹적인 탐구
김범석 지음 / 흐름출판 / 2025년 1월
평점 :

살아가는 방법도 천차만별이지만 죽음을 대하는 방법도 각양각색이다. 삶에 철학이 있다면 죽음에도 철학이 있다. 살아가는 의미가 있다면 죽음의 의미는 무엇일까? 이 순간에 대한 성찰이 삶이라면 순간을 벗어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죽음은 상실의 고통만큼이나 받아들이기 어렵다. 하지만 죽음의 시간을 벗어날 수 없다. 죽음을 대하는 자세는 삶의 자세만큼이나 중요하다. 삶의 마지막 시간을 배려하는 것은 생에 대한 성찰의 일부분이다. 삶과 죽음은 공존한다. 삶이 죽음이고 죽음이 곧 삶이다. 이분법에 익숙한 우리의 생각이 죽음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을 키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삶이 소중하다면 죽음도 소중하다.
죽음과의 대면은 굳어가는 신체를 바라보는 것만큼 처참하다. 상실과 슬픔, 잃어버린 시간에 대한 후회가 밀물처럼 밀려온다. 한국사회는 초고령화가 진행 중이다. 그래서인지 암환자가 급격하게 늘어간다. 하지만 과학에 기반을 둔 의학발전은 암에 대한 선입견을 상당부분 누그러뜨렸다. 이젠 적지 않은 암환자들이 특별한 항암제의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덩달아 암 예후도 좋아져 평균 수명도 점차 늘어가고 있다. 암은 곧 죽음이라는 명제가 조금씩 바뀌고 있는 것이다. 이는 암을 치료차원에서 예방차원으로 관점을 바꾼 정부의 노력도 한몫했을 것이다. 하지만 암에 대한 근원적인 생각은 여전히 부정적이다. 암은 무엇일까? 왜 우리 몸에 나타나 고통과 아픔을 주는 것일까?
암도 살려고 태어난다. 복제오류로 인한 유전자변형, 수억 번의 복제로 탄생한 돌연변이, 선택압을 통한 세포의 생존은 인간의 생존만큼 질기고 끈덕지다. 더군다나 놀라울 정도로 빠른 분열을 일으켜 온 몸을 헤집으며 씨를 뿌리고 강력한 내성으로 웬만한 항암제도 거뜬히 이겨낸다. 현대의학으론 암을 정복하기 불가능하다. 그래서 암에 대한 재정립이 필요하다. 암도 우리 몸의 일부라는 생각이다. 암은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나 몸에 정착한 물질이 아니다. 변형된 일부 세포가 극한의 조건을 극복하고 비우호적인 외부요인과 시간이란 변수 덕분에 몸속에서 탄생한 것이다. 저자의 암에 대한 시각은 우리가 생각해왔던 관점을 뒤바꾼다. 암은 죽음과 불멸의 두 얼굴을 가진 채 생존을 유지해왔다. 암의 노련함과 영특함은 인간의 뇌를 닮은 것 같다. 뇌 역시 수많은 진화의 선택압을 견디며 생존전략을 펼쳐왔다. 암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는 중이다.
본 책은 암환자를 중심으로 삶과 죽음 그리고 인간의 의미를 매혹적으로 탐구한다. 죽음을 앞둔 이들에 대한 회고는 살아가면서 무엇을 중심에 두었느냐에 따라 결정이 되는 것 같다. 하지만 숭고한 죽음은 존재하지 않는다. 죽음엔 고통과 상실만 남는다. 죽음을 이해하는 것은 인간의 의식이 존재할 때뿐이다. 저자는 의사로서 인간이 지닌 근엄한 삶의 의미를 강조한다.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죽음이지만 어떤 죽음을 맞이하는가는 전적으로 자신에 달려있음을 깨닫는다. 무엇을 간직하고 죽을 것인가? 남겨진 이들에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길 바라는가? 무엇보다 삶의 주어진 시간을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는 죽음에 대한 숭고한 의식을 깨닫게 한다.
우리는 살아가는 기적을 누리고 있다. 확률적으로 거의 희박한 생명체의 출현은 지구라는 문명을 탄생시켰다. 언젠가 태양계의 에너지가 소모된다면 우리가 알던 모든 것은 먼지처럼 사라질 것이다.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불편하지만 죽음이란 명제를 확장한다면 죽음은 원래 우주의 주인이 아니었을까? 오히려 삶이 이상하다. 삶을 당연하게 바라보는 시각은 인간의 오랜 전통만큼이나 몽매하고 어리석다. 태어나면서 죽음이 시작된다. 결국 삶의 이치는 죽음으로 가기위한 지난한 여정이다. 저자의 정견은 세상에 대한 올바른 이해다. 암이든 노화든 받아들여야할 삶의 일부분이다. 인간은 누구나 암을 가지고 살아간다. 또한 죽음에 예외는 없다. 우리는 시시각각 태어나고 시시각각 죽는다. 저자의 말대로 죽음은 직선이 아니다. 우리의 생각이 직선 일뿐이다. 고통과 상실 속에서 찾는 생의 의미와 죽음에 대한 이해, 그리고 그토록 두려웠던 암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 의사의 눈으로 바라본 깊은 삶의 이야기에 귀기울여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