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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블로 공식 요리책
앤디 루니크.릭 바바 지음, 최경남 옮김, 황의형 감수 / 아르누보 / 2024년 5월
평점 :
인류의 역사는 먹거리를 채우기 위한 전쟁의 연속이었다. 배고픔은 그 무엇보다 전쟁을 일으키기 위한 필요조건이었고 이는 침략과 약탈 그리고 공포와 두려움을 심어주었다. 인류는 평생 가난과 기근을 정복하기 위해 다양한 정치체제와 사회시스템을 만들어왔다. 덕분에 배고픔은 빠르게 사라져갔다. 하지만 배고픔보다 훨씬 가치 있는 신념들도 사라져갔다. 배고픔은 비록 다툼이 있을지라도 상대를 위로하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자신 역시 같은 처지임을 깨닫기 때문이다. 따뜻한 스튜와 먹음직스러운 고기, 푸짐한 빵은 아픈 고통과 시련을 잊게 만든다. 삶은 배부름으로부터 새롭게 태어난다.
디아블로 공식 요리책은 성역 여관들의 레시피를 중심으로 스토리가 전개된다. 성역 여관들은 혼란을 피해 몸을 숨긴 범죄자, 가난한자, 그리고 고난으로 삶이 무너진 자들의 유일한 안식처다. 그들에겐 위로의 시간이 필요하다. 음식은 상실과 고통을 경험한자들의 몸과 마음을 녹일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다. 현실이 불편한 이들은 게임을 통해 위로를 받곤 한다. 규칙과 규정에 얽매인 세상보단 무한한 시공간 속의 자유를 갈망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허기진 배를 채울 수 있는 곳이라면 이보다 좋은 곳은 없을 것이다.
디아블로는 어둠에 맞선 인간의 용기에 관한 스토리다. 어둠은 빛에 의해 모습이 드러난다. 희망을 잃은 자들은 타닥타닥 타오르는 모닥불 속에서 한줄기의 희망을 찾는다. 온기는 마음을 녹이고 서로에 위로를 전달한다. 어머니는 그들을 위해 따뜻한 스튜와 고기, 맛깔스러운 음식들을 준비한다. 인생의 패배자들을 위한 어머니의 행동을 이해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테드릭은 이런 자들을 대하는 어머니의 행동을 보며 진정한 구원이란 무엇인가를 고민한다. 그리고 수년 동안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갖은 음식을 맛보았고 여행자들을 위한 레시피를 준비한다.
신 트리스트럼, 칸두라스는 ‘죽은 송아지 여관’으로 불릴 정도로 피폐된 곳이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변함없는 공간이 있다. 주인이자 바텐더인 브론과 요리사 오티러스는 죽음에서 소생할 정도의 강한 에일과 코코뱅을 만들어낸다. 오티러스의 채소리소토는 보기에는 간단하지만 많은 시간과 정성이 필요하다. 브론의 비프 부르기뇽은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돈다. 소고기 목심을 부드럽게 굽고 갖은 페이스트를 섞어준 다음 3시간 넘게 오븐을 통해 조리된 음식이다.
요리책엔 9곳의 여관, 선술집 등장한다. 그리고 장소마다 독특하고 훌륭한 요리들이 선보인다. 선술집 요리보단 근사한 팝의 메뉴가 어울릴 정도로 정성이 가득하다. 물론 시간이 충분하다면 가정요리로서도 부족함이 없다. 음식은 지역마다 특성이 있다. 오래전부터 내려온 음식은 그 지방의 문화와 삶의 애착이 담겨있다. 그리고 음식을 통해 서로의 안부를 챙기고 위로의 시간을 갖는다. 음식은 따뜻하다. 따뜻한 음식은 마음을 보듬는다. 또한 과거나 미래의 걱정이 사라진다. 요리 앞에선 모든 감각이 필요하다, 우리에게 필요한건 지금, 이 순간을 맛볼 수 있는 위로의 시간이다. 상실과 고난을 이겨낸 자들을 위한 레시피가 가득한 디아블로 요리책을 소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