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생명의 지문 - 생명, 존재의 시원, 그리고 역사에 감춰진 피 이야기
라인하르트 프리들.셜리 미하엘라 소일 지음, 배명자 옮김 / 흐름출판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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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면 건강할 때와는 다른 일들을 경험하게 된다. 크고 작은 통증과 염증, 잦은 치료와 수술, 무엇보다 치료 전후 감정의 피폐까지 신체적 고통과 더불어 내면의 상처가 몸과 마음을 휘젓는다. 인간은 누구나 아프지 않고 평생을 살기를 갈망한다. 하지만 그런 삶은 소수에게만 허락된 축복이다. 대부분은 만성질병에 시달리거나 외상에 의한 치명적인 상처로 고통을 받는다. 질병은 삶의 질을 완전히 바꾸어 놓는다. 또한 자신이 선택한 인생의 방향과 목적에 다른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어쩌면 인생이란 예기치 않게 다가오는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생은 아프기 전과 아픈 후의 삶으로 나누어지는 것 같다.

 

병원의 검사는 피로 시작해서 피로 끝난다. 인간 삶도 역시 피로 시작해 피로 끝난다. 피가 없으면 인간은 존재할 수 없고 삶의 의미도 지닐 수 없다. 피는 생존에 필연적인 물질이며 대체불가제다. 그런데 우린 놀라우리만치 피에 대해 무관심하다. 오히려 심한 강박이나 혐오적인 입장을 취한다. 피 한 방울이 지니는 의미는 무엇일까? 피는 어떻게 인간의 생존을 좌우해 왔을까? 인체의 궁금증은 피를 알아갈수록 더욱 신비하다. 우린 자신의 피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저자 라인하르트는 피를 생명의 지문이라 말하며 외과의사로 자신이 경험했던 피에 관한 다양한 스토리를 하미트라는 응급환자를 중심으로 풀어간다.

 

하미트는 가슴에 칼을 꽂고 응급수술대에 누워있다. 마취의사를 비롯하여 다수의 의료진들이 호흡을 맞추며 하미트의 수술을 집도한다. 눈을 뗄 수 없을 정도의 세밀함과 긴장감이 뇌를 휘젓는다. 현대사회는 물질적 풍요에 비해 심장이상증후군 환자들이 무척 많이 늘어나고 있다. 과도한 식습관의 변화도 원인이겠지만 정신적 스트레스는 심장에 압박을 가하는 가장 무서운 무기 중의 하나다. 심장은 피가 나가고 들어오는 말 그대로 생명의 분수와 같다. 심장 수술은 몸을 개복해야하기에 엄청난 스트레스와 압박이 뒤따른다. 또한 생존 여부도 극히 미지수다. 저자는 하미트의 수술을 통해 우리 몸에서 피가 순환하는 단계와 역할을 상세히 설명한다. 또한 우리가 알지 못했던 피의 기능을 강의하듯 풀어간다. 하미트는 우리주변에 얼마든지 가능한 환자들 중의 하나다. 단지 우리의 편견과 이해관계가 생각을 막고 있을 뿐 삶과 죽음의 경계선은 극히 불투명하다. 하지만 피에 관한 저자의 이야기는 놀라우리만치 상세하다.

 

피의 응고에 관한 스토리는 많은 이들에 유효할 것 같다. 피는 밖으로 나오는 순간 응고된다. 혈관 내에서는 혈전이라는 물질을 생성하여 뇌경색이나 심근경색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혈액은 응고가 되어야만 지혈이 가능한데 응고가 되지 않으면 혈우병을 발생하기도 하고 다양한 장기 손상의 원인을 일으킨다. 반대로 혈액이 너무 쉽게 응고되면 말초신경의 부작용 및 심장압박으로 피의 순환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피는 혈관을 따라 원칙대로 흐름을 유지해야만 제 기능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너무 간단한 말 같지만 피 순환에 관한 부작용은 신체에 엄청난 무리와 압박을 가하고 해결되지 않으면 급사로 이어지기도 한다.

 

신체만 정신적 스트레스를 주는 것일까? 우린 정신과 신체를 분리하는데 익숙하다. 하지만 신체는 결코 정신과 분리될 수 없으며 과도한 정신적 스트레스는 심장의 긴장을 유발한다. 공포 영화를 보거나 급박한 사건에 노출된다면 교감신경과 부교감 신경의 혼란으로 극심한 공포에 휩싸이게 된다. 특히 어린 시절의 폭력적 트라우마나 성인기 PTSD는 장기적이고 주기적으로 심장에 압박을 가하며 약물치료보다 트라우마의 재해석을 통한 심리적 안정감이 훨씬 좋은 치료법임을 강조한다. 저자는 외과의사 이전에 환자와의 교류와 이해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직접적으로 강조한다. 실질적으로 많은 환자들이 의사와의 교류를 가장 안정적인 치료법으로 선호한다.

 

, 생명의 지문은 피와 생명에 관한 책이다. 1부는 피의 이야기를 통해 피의 순환역할을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심장은 피 이야기의 중심이다. 신체의 혈액 순환을 최초, 최종적으로 관장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전쟁을 혐오한다. 피의 역사는 전쟁에 대한 강한 의구심과 삶과 죽음이라는 절명의 순간에 위치한 인간 존엄의 실상을 마주보게 한다. 또한 피로 얼룩진 중세시대를 회고하며 순수혈통이라는 어이없는 분리집단의 실체를 고발한다. 지금도 민족주의라는 정당성을 앞세운 국가들의 혈통주의는 피에 대한 복수심으로 가득함을 알 수 있다. 피는 생명이 본질이다. 결코 분리될 수도 파괴 될 수도 없다. 저자는 2부 생명을 통해 이를 상세히 기술한다. 피에 관한 저자의 이론은 놀랍고 디테일하다. 또한 이해하기 쉽게 쓰여 마치 소설을 읽는 것 같다. 존재의 시원이자 생명 그 자체인 피에 대한 이야기,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리뷰를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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