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세상과 사랑에 빠지기 열다
헤르만 헤세 지음, 박종대 옮김 / 열림원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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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계산도 수학초식도 아닌 기적이다. 내 평생이 그랬다. 모든 것이 되돌아왔다. 똑같은 곤경, 똑같은 욕망과 즐거움, 또 같은 유혹이, 나는 계속 같은 모서리에 머리를 찧었고, 같은 연들과 싸웠고, 같은 나비를 쫒았다. 항상 같은 상황과 상태가 반복되었다. 하지만 그건 영원히 새로운 놀이였고 항상 아름답고 항상 위험하고 흥분되었다. --요양객(1923) 중에서

노자의 무위가 떠오른다. 내가 나비를 보는 것인지, 나비가 나를 보는 것인지. 마치 몽롱한 인생의 단면을 직접적으로 만난 것 같다. 인생이 기적이란 말이 모든 이들의 가슴에 새겨져 있으면 좋으련만 인간은 너무도 늦게 기적의 진리를 깨닫는다. 그래서 삶의 과정을 힘들다고 하는 것일까? 헤세의 철학은 운명적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마치 운명에 맞서 싸우는 현실이 안타까워 운명을 받아들이라는 충고다. 헤세의 생각이 맞다. 우린 쳇바퀴를 도는 인생을 평행선으로 인식한다. 그리고 괴로워한다. 하지만 반복되는 일상이 인생이다. 그리고 그 순간 아름다움과 고결함 순수함을 찾는다.

 

욕망을 품은 시선은 불순하고 왜곡된다, 아무것도 바라는 것 없이 바라볼 때만 그 바라봄이 그저 순수한 관조일 때만 사물의 영혼과 아름다움이 우리에게 문을 열어준다. -영혼에 대해 P45

마음이 혼란스러운 것일까? 세상이 혼란해진 것일까? 혼란은 많은 이들에 질서라는 동기부여를 일으킨다. 질서는 안정적이고 평화적이며 무엇보다 삶의 가치와 의미를 부여한다. 인간의 문화적 배경 역시 이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인간은 어느 순간부터 살아있는 모든 것에 이름을 부여하고 개체마다 범위를 정하고 규칙을 만들었다. 새로운 이름은 새로운 창조를 의미하진 않는다. 순전히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분류다. 인류는 호모데우스를 꿈꾼다. 가치관의 확장은 좋은 것일까? 우린 파편적인 세상에 살고 있다. 수많은 생각이 고개를 들지만 구름처럼 사라져버린다. 저마다의 생각이 옳다고 주장하는 세상은 인간은 역사다. 그리고 광기에 사로잡힌 수많은 권력자들이 자신의 생각을 선이라 여기며 세상을 뒤흔들었다. 종교는 무엇이고 전쟁과 평화는 무엇일까? 관념이 지배하는 21세기에 우리가 찾고자하는 인생의 마중물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무엇보다 우린 어떻게 관조를 잃어버렸을까?

 

헤세는 매 순간을 사랑한다, 그리고 사랑하려 자신의 성찰을 아낌없이 사유한다. 인생의 본질에 관해 이토록 처절하게 내면을 지워나간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지독한 삶의 부조리에 맞서지만 그의 시선은 삶을 벗어나지 않는다. 인간은 기적이란 말 한마디에 그의 삶에 대한 모든 철학이 담겨있다. 기적은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지만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될 수도 있다. 처절하게 자신과 싸워본 자만이 기적을 깨닫게 된다.

 

가지치기를 한 떡갈나무를 바라본다. 고통이다. 아픔과 슬픔이 베어난다. 하지만 야만의 고통은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킨다. 파릇하게 돋아나는 새싹은 아픔 속에서 피어나는 삶의 희망이다. 그리고 마치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오롯이 삶을 살아간다. 자연은 제 할 일을 할 뿐이다. 우리에게 연민도 관심도 고통도 주지 않는다. 우리의 생각과 시선이 마음을 흔들게 할 뿐이다. ‘그 모든 아픔에도 나는 여전히 이 미친 세상과 사랑에 빠져있다.’ 헤세의 외침은 찢기고 구겨진 삶을 향한 간절한 희망회로다. 세상이 미쳤을까? 내가 미쳤을까? 사랑이란 관념은 세상과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우린 세상을 사랑한다. 어떻게 하느냐는 인생의 과제다. 어쩌면 그와의 만남이 변화의 마중물이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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