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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고통일 땐 타인을 사랑하는 게 좋다 - 나를 구하는 인간관계의 과학
앤서니 마자렐리.스티븐 트리지악 지음, 소슬기 옮김 / 윌북 / 2024년 8월
평점 :
인류가 신체적 불리함을 극복하고 지구의 최상위종으로 군림하게 된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수십만 년 동안 변하지 않았던 뇌의 기능이 갑자기 폭발하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 많은 인류학자나 지리학자 고고학자들이 발표한 논란의 중심엔 상호간의 교류, ‘공감’이 존재한다. 원시인류는 타인의 눈빛이나 행동의 통해 상대의 감정과 의도를 교감했다. 이는 힘이 약한 소수 종들에겐 탁월한 선택이자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되었을 것이다. 혼자 사냥을 한다는 것은 굶어죽거나 죽임을 당하거나 멸종의 길을 재촉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피엔스종은 부족의 평화와 안녕을 위해 ‘겸손’을 최상의 규칙으로 삼았다고 한다. 자만이나 교만은 부족을 유지하는데 치명적인 약점이었고 부족의 멸망을 앞당길 수도 있었다. 당시는 무척 힘든 시기였음에도 원시인류는 살아가는데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를 깨닫고 공동체에 적용했으며 이를 통해 지구 정복을 가능케 한 것이다.
21세기 자본주의는 성장이라는 담론이 지배한다. 성장은 상호이해와 교류가 아닌 극한 개인주의를 바탕으로 가계, 기업, 정부를 장악하고 있다. 성장하지 않으면 마치 모든 것이 무너질 듯한 공포와 두려움이 지배한다. ‘나’ 중심의 사회는 나 이외의 벽을 만든다. 모든 상황이 자기중심적이다. 어쩌면 유전자 지배사회라는 이기적 유전자의 설득력이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던 실체와는 다른 결론이 밝혀지고 있다. 성공은 누구에게도 그들이 바라는 것을 쉽게 주지 않는다. 자본주의 시스템은 제로섬게임이다. 누군가의 몫을 빼앗는 것이 곧 자신의 몫이라는 무한 경쟁의 실체다. 이로 인해 우리 감정과 신체는 적지 않는 고통을 받는다. 긴장은 스트레스를 일으켜 코르티솔을 분비시키며 몸과 마음을 각성성태로 유지한다. 엄청난 스트레스가 장기를 망가뜨리고 지속적인 긴장은 호르몬과 신경교란을 일으키며 만성질환의 원인이 된다. ‘나’ 중심, 자의식은 시스템이 만든 강한 편견이다. 우린 누구도 혼자서는 살수 없으며 세상사에 아무런 관심이 없더라도 누군가의 도움에 의해 자신이 연명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한다.
지금 삶에 고통을 느끼고 있다면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는 신호를 인지해야한다. 인간 본연의 모습을 찾는 것은 우리가 가장 원하던 행복의 첫 번째 조건이다. 인간은 뼛속까지 사회적 동물이라 말한다. 그런데 우린 이를 너무도 쉽게 간과하고 자신이 최선인양 자신에 올인 하는 사회에 익숙하다. 그리고 공허함과 허무함을 느끼고 때론 외롭다고 토로한다. 불안과 우울증이 빠르게 전파된다. 접촉 없는 교류가 SNS라는 이름으로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 어처구니없는 자기기만이 개인주의를 더욱 강화하고 인류는 더욱 자신만의 장벽 쌓기에 몰두한다. 이제 ‘나’ 중심으로 펼쳐진 세상의 진실을 깨달을 때도 되지 않았을까? 그리고 이토록 극복하기 어려운 현상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해하며 다른 변화를 가져갈 수 있을까? 또한 무너지는 우리의 건강을 회복하기 위한 최선의 선택은 무엇일까?
앤서니 마자렐리와 스티븐 트리지악은 현직 의사이자 과학자로 인간이 이타적 본성에 귀를 기울일 때 어떤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는지를 수많은 과학적 증거를 통해 풀어간다. 문득 원래적인 인간의 본성이란 무엇일까에 의문이 간다. 인간의 본성은 ‘나’가 아닌가? 하지만 나란 존재는 타인이 있어야 가능하다. 인간 본성은 나가 아닌 타인이 주체라는 생각은 세상의 관점을 완전히 바꾸는 경험을 하게 만든다. 그 중심에 ‘동감’과 ‘공감’이 있다. 동감은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고 공유하는 능력이고 공감은 동감을 바탕으로 타인의 괴로움을 덜어주기 위해 이타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나의 중심이 타인으로 이동한다는 것은 타인의 시선을 받아들이고 그들의 감정과 행동을 이해하며 이를 위해 자신을 벗어난다는 것을 말한다. 궁극적으론 타인을 위하는 행동이 자신을 보듬어 내면적 만족과 행복함을 가져다준다는 의미다.
병원에 진료를 받으러 가면 다소 불편한 감정이 빠른 진행이다. 뒤에서 대기하는 환자를 생각하면 당연한 이치라 여기지만 의사의 선택권을 조금만 변화 시킨다면 환자와 의사에게 어떤 예측 가능한 결과가 일어날까 질문해본다. 대부분의 의사는 환자의 직접적인 감정에 별다른 관심이 없다. 이는 교육과정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의사의 공감 능력과 친밀도는 환자의 치료를 더욱 긍정적으로 바꾼다는 과학적 근거를 무시하는 경우다. 40초만 시간을 할애하고 질문을 바꾼다면 환자뿐만이 아니라 의사 역시 자기 치유를 경함할 것이다. 또한 환자들이 다른 환자들의 멘토 역할을 수행하는 방법은 삶의 의미와 가치를 새롭게 만드는 효과를 발휘한다. 공감과 배려, 이타적인 행동은 분명하고 효과적인 치료법임을 증명한다.
본 책은 ‘나’라는 중심에서 ‘타인’으로의 변화를 촉구한다. 나라는 존재는 삶의 의미를 만들어주지 못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자기 몰입은 자기 방어에 불과하며 세상의 횡포에 극히 취약하다. 인간은 상호의존적이며 받는 것보단 줌으로서 자신의 가치를 이해하고 증명한다. 이는 감정과 신체 특히 호르몬에 가장 긍정적인 효과를 나타내며 삶의 의미를 풍요롭게 만든다. 살기 위해선, 아프지 않기 위해선 타인을 위한 시간과 노력을 아끼지 말라. 그리고 이런 순간들이 쌓여 치유의 기쁨과 잔잔한 행복의 시간을 만들어 줄 것이다.
지금 나는 공감능력이 있는가? 무척 부끄럽다. 여전히 나‘라는 중심에서 거의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무엇 때문일까라는 생각도 하지 않는다. 일상적인 습관이 타인의 시선을 거두고 장벽을 쌓는 중이다. 하지만 저자의 말과 다르지 않는 감정과 신체적 고통을 경험한다. 자기몰입에 대한 보상은 극히 짧고 부분적이라 또 다른 보상을 찾아 여기저기를 헤맨다. 인생의 방향성을 이야기하지만 생의 의미에 대해선 별다른 관심이 없다. 문득 원시인류의 탁월한 선택이 떠오른다. 그들의 선택은 다분히 강요적이었지만 새로운 환경을 만들었고 생존과 번식에 성공했다. 그리고 타인에 대한 시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뼛속 깊숙이 새겼을 것이다. 우리의 시선을 바꿔야하는 시점이다. 저자는 공감을 얻기 위한 7가지의 처방전을 소개한다. 우리가 꾸준히 하는 일이 시간이 지나면 우리 자신이 된다는 말처럼 공감을 일상화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는 ’삶이 고통일 땐 타인을 사랑하는 게 좋다‘ 추천하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