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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펜하우어 행복 수업 - 자신만의 삶의 역사를 써라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지음, 임유란 엮음 / B_공장 / 2024년 1월
평점 :
영생에 대한 욕망은 불로장생의 꿈을 키웠고 행복에 대한 열망은 극한 소비사회의 탐욕을 키워왔다. 우린 행복한가란 질문은 우리가 행복하지 않고 있다는 현실을 반증한다. 욕망을 앞세운 소비의 진화는 현대사회를 관통하는 키워드이자 행복의 우선순위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소비가 주는 만족감이 그리 크지 않다. 오히려 집착과 소비 뒤의 공허함이 감정을 불편하게 한다. 사회적 기대가 개인에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사실은 우리가 느끼는 행복감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인간은 작은 친절, 세상에 대한 경이로움, 감동적인 이름다움 속에서 삶의 진실을 느낀다. 진정한 행복은 대상이 아니라 세상을 이해하는 마음의 변화다. 나에게 의미를 부여하면 소중한 시간이 되고 아름다운 만남이 된다. 행복의 조건은 자신의 태도에 의지한다. 자신이 바라보는 세상에 대한 이해가 우선순위다.
쇼펜하우어의 행복수업은 행복은 스스로의 선택과 의지를 통해 만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인간의 삶의 과정을 고통의 시간이라 이야기한다. 행복하기 위한 조건은 고통을 인지하고 그로부터 벗어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일상의 고통은 집착으로부터 비롯된다. 타인과의 비교는 시기와 질투라는 부정적인 마음을 만들고 고통을 수반한다. 또한 더 많이 더 빠름을 유지하는 경쟁시스템은 자신만 뒤쳐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주기도 한다. 이런 상황은 행복보단 불행이 삶을 지배할 것이다. 또한 그는 행복과 불행에 대한 상상을 억제하라고 말한다. 제멋대로 자라는 상상력은 마치 모래성과 같아 허망하게 사라질 운명이기 때문이다, 우린 다가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에 쌓여있다. 불행이 다가온다는 생각은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움츠리게 만든다.
인간은 누군가의 존재이고 싶고 누군가에 의지하고 인정받고 싶은 사회적 존재다. 이는 사랑과 교감, 공감, 배려하는 말 한마디가 얼마나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고 훈훈하게 하는지를 통해 알 수 있다. 우린 자신을 내어주었을 때 훨씬 많은 풍족함과 행복함을 느낀다. 또한 스스로의 내면을 잘 안다고 하지만 거의 알지 못한다. 인간의 마음은 하루에도 수만 가지의 이미지와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 자아는 우리가 기억하고 경험해 왔던 시간들의 종합체다. 우린 매순간 변화하는 자아개념을 자신의 정체성이라 여기며 자아의 성장을 위해 끊임없는 정보를 축적하고 대변자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 하지만 자아는 실체가 아니다. 세상에 대한 순간적인 감정이자 자신이 생각하는 관념의 틀이다. 우린 이를 자신의 실체라 여기며 많은 상황을 자신에 유리하게 해석한다. 고통의 시작은 자신의 생각이 전부라는 오점에서 비롯된다.
난 지금 행복한가? 누구에게나 행복의 기준이 있지만 관점을 바꾼다면 행복한가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행복에도 관점이 있다. 자신만의 기억, 경험이 대한 기준이다. 그렇다면 행복은 순수한 개인적인 감정일까? 우리가 느끼는 감정만이 진실로 행복에 대한 접근을 허락할까? 19세기 초반 염세주의 철학자로 알려진 쇼펜하우어는 유독 인간에 대한 근원적인 고찰, 특히 존재와 자유로의 회기에 관심을 기울였다. 산업혁명이라는 초유의 시대적 변환은 철학자들에게 분명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에 대한 재해석을 요구했을 것이다. 이는 지금 시대와 별반 다르지 않다. 우리 앞에 놓인 혁명적 기술변화 역시 이전과는 다른 철학적 사유를 요구한다. 행복은 정답이 있다. 바로 지금이다. 쇼펜하우어 역시 지금 이 순간에 대한 자각을 통해 행복을 말하려 했을 것이다. 행복수업은 그에게 듣고 싶은 순간에 대한 사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