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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영국 여인의 일기, 1930 ㅣ 어느 영국 여인의 일기
E. M. 델라필드 지음, 박아람 옮김 / 이터널북스 / 2022년 8월
평점 :
자전적 코믹소설 | 어느 영국 여인의 일기, 1930
어느 영국 여인의 일기, 1930
E.M.델라필드 지음, 박아람 옮김, 이터널북스 펴냄
1930년! 울 아버지가 태어나기도 전인 이 시대에 과연 무슨 일이 있었기에 제목에 1930이 붙었을까 싶어 검색을 해본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한민국 12년, 중화민국 민국 19년, 일본 쇼와 5년, 응우옌 왕조 바오다이 5년... 정말 오래전이구나 싶은 때 김좌진 장군이 암살당한 해라는 문구가 들어온다. 더 훑어보니 E. M 델라필드가 일상을 적어가던 그 해, 참 많은 일이 있었구나. 그러고 보니 이번에 서거한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1926년생이니 어쩌면 델라필드는 여왕보단 언니로서 동시대를 살아냈겠다.
속이 부글거린다.
하지만 일생일대의 실수를 저질러서라기보다는
지적인 저술가들이 우리의 행동을 정확하게 예측할 만큼
모든 인간이 고만고만하다는 우울한 생각이 들어서다.
나는 '나'가 모든 인간이 고만고만하다고 느낀 것에 한편으론 위로를 삼는다. 그래서 당시의 이달의 책 선정에 대해 '나'가 느낌을 적은 부분에 공감을 구십구 개 날린다. 백 개를 안 날린 이유는 우리에게 새로운 것이 나타난다는 것이 두려워서일지도 모른다. 코로나19처럼 말이다. 그러고 저러고를 떠나 억압받고 남편의 눈치를 보며 살아야 했다고 알고 있던 그 시절, 나름 권위 있는 선정작업에 대해 까다롭게 굴 줄 아는 '나'가 궁금해지는 순간이다.
이 나라나 저 나라나 부모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일반적인 현상은 비슷한가 보다. 우리도 모임을 가질 때마다 내 아이는 연타석 펀치를 날리며 열심히 깎아내리고 남의 집 자식은 세상 둘도 없이 손 갈 데 없는 엄친아로 만들지 않던가. 이런 걸 미리 깨달아 교정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못했다면 나의 일기장에도 저런 이야기가 버젓이 자리잡았겠다. 아, 서툰 엄마들 같으니^^
일기 형식으로 쓰인 코믹소설 "어느.영국 여인의 일기, 1930"을 읽으며 내내 '인간미란 뭘까?'를 생각해봤다. 세상에 인간관계만큼 힘든 일이 있겠나 싶을 만큼 소설 속에는 다양한 상황에서 나올 수 있는 더욱 다양한 속마음과 반응과 겉마음, 즉 응대가 나온다.
이런 응대가 나올 만한 상황을 연출하기 위해 '나'의 주변에는 여러 유형의 여자가 등장한다. 나는 소중한 친구인 시시와 로즈를 통해 자신의 속물 근성을 인정한다. 좋은 의도로 뭔가를 행하지만 항상 2% 부족해 기분 상하게 하는 프랑스인 마드무아젤과는 갈등도 겪지만 제법 잘 지내는 편이다. 한편, 남의 사정 따윈 안중에도 없기에 남의 기분 역시 아랑곳하지 않고 산통을 깨곤 하는 거만한 대부호 레이디 복스는 나에겐 마치 암초 같은 존재. 그런데 이상도 하지, 나는 마뜩잖은 레이디 복스의 초대를 받아들인다. 대체 왜? 우리가 위선이라는 도덕적 일탈을 하는 이유는 주로 상대의 눈치 없는 고집 때문이 아닐까? 툭하면 뭔가가 고장났다며 주인을 닦달하는 주인인 듯 주인 아닌 주인 같은 요리사, 늦은 시각의 초대에 '아이고 아니에요' 하고는 냉큼 집 안으로 들어서는 수다쟁이 목사님 아내, 남들의 고민을 들어주는 게 마치 자신의 의무라고 생각하는 블렌킨솝 부인과 그녀의 딸 바버라, 나름의 경쟁자 앤젤라, 쬐끔 과격한 페미니즘으로 모두를 좌불안석하게 하는 미스 팬커튼, 그리고 한창 사춘기인 나의 아들 딸과 <타임>만 읽어대는 남편도 빼놓을 수 없는 인물들이다.
이 많은 관계 속에서 '나'는 중심을 잡으려고 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겠지. 지금 여자들의 입지가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차별이 존재하고 억압받는 삶이 마치 당연하게 여겨지지 않던가. 그에 비추어 보자면 당시 여인들의 위치란 왠지 상상 가능한 범위랄까. 가부장적인 남편에게는 순종하고 맘대로 되지 않는 아이들에게는 계속 꿍얼꿍얼 잔소리를 하고 돈에 쪼들리면서도 하인들 부리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집안에 신경 쓸 일이 끊이지 않으면 인간적인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걸까? 아무래도 그런 것 같지만 지금은 그걸 바로잡을 새가 없다.
'유쾌하지만 가볍지 않은', '고전이지만 놀랍도록 현대적인'이라고? 생계형 작가였던 E. M 델라필드의 자전적 소설 "어느 영국 여인의 일기, 1930"에 붙은 수식어가 어쩜 이리 딱인지. 그녀의 삶은 마치 익살을 툭툭 내던지듯 한다. 소심하지만 절대 소심하지 않은 척 구는 1930년의 영국 여인의 생활이 눈에 보이듯 그려지니 이를 어쩔. 집으로 가서 거울을 보는 순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을 깨닫는다. 파티가 끝난 뒤의 모습이 시작할 때와는 사뭇 다르다는 것. 다른 여자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고 싶지만 삶의 많은 것들이 그렇듯 잘 모르겠다.
양육과 부엌일 말고는 아무 데도 관심을 갖지 않는 가축 같은 삶을 사는 건 직무 유기라는 사실을 모르겠어요? 쎈 언니의 발언에도 불구하고 페미니즘 소설이라기엔 기차, 편지, 엽서, 초대, 구근식물, 찻주전자, 벽난로, 무도회... 아날로그 감성 돋는 소재들이 더 눈에 들어오는 일종의 코믹소설. E.M. 델라필드의 자전적 소설 "어느 영국 여인의 일기, 1930"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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