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일곱의 맛 철학, 고등학생의 시선으로 세상을
맛보다
오늘 하루도 맛있었습니다!
얼떨결에 글쓰기 동아리에 들어간 고등학생
소년 김풍미.
동아리 담당이자 국어선생님인 쉼
샘은
1년 동안 각자가 좋아하는 것을 소재로 자유롭게 글을
쓰라고 한다.
풍미는 안 쓰던 계정을 열어 블로그를
만들고
주제를 제일 좋아하는 '먹는 것'으로
정하고는
이왕 쓰는 거, 거창하게, 고딩다운 허세도 좀
쳐가며
먹거리에 철학적인 하루의 단상을 담아 글을 쓰기로
한다.
'서른한 가지 맛 아이스크림, 우리는 몇
번째?'
하교 후 우연히 만난 은미와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뭘
먹을지 고민하던 풍미는
문득
냉장고 안 각자의 자리에 박힌 채 선택을 기다리는 아이스크림이
교실 속 저마다 자리 잡은 서른한 명의 급우들 같다는 데
생각이 미친다.
선택받지
못하면 유통기한이 지나 버려질지도 모르는 아이스크림의 처지나
경쟁에서 낙오되어 사회에서 버려질까 두려운
마음에
무턱대고 일단
공부하는 학생들의 현실.
먼저 선택받고자 꼬리를 흔들고 몸부림치는 것과 다를 게
없는 삶이다.
달걀 프라이, 알을 깨는 순간은 누구에게나
있어
동생 풍성이의 스마트폰을 만지다 폰에 저장된 야동을 보게
된 풍미.
풍미 역시 중학교 때 야동을 보다 아빠한테 딱 걸린
경험이 있다.
유투브든 웹툰이든 사실 요즘 아이들이 야동을 접하기란
정말 누워서 떡먹기 수준이다.
그런데도 어른들은 숨기지 못해 안달한다는 게 좀 우습기도
하다.
마침 저녁을 먹기 위해 달걀을
꺼냈다가
이것은 껍질을 깨야만 먹을 수 있다는 데 생각이
미친다.
어미에게서 떨어져 나와 생명을 잃은
알은
스스로 깨든, 누가 깨주든 세상과의 만남을 가로막고 있는
껍데기를 깨야 한다.
이것이 달걀의 운명이라는 데 생각이 미친
풍미는
자신 역시 알을 깨고 나와야 하는 존재가 아닌가 하는
생각에 젖는다.
야동에서 생각이 제법 멀리 나아간
하루였다.
블로그에 글을 쓰는 형식을
취했기에
포스팅 아래에는 댓글이 달린다.
글 내용에 대한 댓글도 있고 관계없는 댓글도
있고
비밀댓글도 있고, 심지어 풍미의 정체를 파악해낸 댓글도
있다.
일부러 쓰지 않는 계정을 열어 블로그를
만들었건만
자신의 노력이 헛된 것 같아 불쾌해진
풍미,
하지만 이 역시 부끄러워할 일도 아니고 감출 일도 아님을
깨닫는다.
쉼 샘의 한
스푼!
풍미의 글 끝마다 붙어 있는 '쉼 샘의 한
스푼!'은
풍미의 맛 철학을 더 풍미있게 만들어주는
장치다.
풍미의 글로 나타난 사람과 사람, 학교와 사회에 대한
청소년의 마음에
시럽을 끼얹어준다고나 할까.
풍미가 두루뭉실하게 말하고 넘어간
부분까지
보다 명확하게 짚어주며 생각의 길잡이 역할을
한다.
세상에.
사진을 잘못 붙여서 목차가 거꾸로
적힌...ㅎ
고등학생의 허세가 양념처럼 듬뿍 담긴
맛철학.
요즘 아이들의 생각이 어떠한지, 어떤 고민을 하는지를 알
수 있는 소설이다.
철학적 측면에서는 고등학생이 이 정도까지 생각할까, 싶은
부분도 있지만
내 아이가 가끔씩 놀랄 만한 발언을 하는 걸
보면
아주 없는 일은 아니겠다 싶기도
하다.
독서록 쓰라고 건네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