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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류바
박사랑 지음 / 창비 / 2017년 10월
평점 :
모성의 위치를 집요하게 캐묻는 소설, 스크류바
우리 사회가 그토록 찬양해온, 모성.
없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없는 사람은 사람이길 포기한 거라고 치부해온 그것.
어쩌면 우리는 지금껏 인간애라는 이름으로
모성을 강요당해 온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 단편소설이다.
버스에서 깜빡 잠이 든 사이 아이가 사라졌다.
반나절 동안 불볕 아래서 아이를 찾기 위해 종횡무진하는 주인공.
하지만 아이를 잃어버려 아이를 찾고 있다는 사실보다
갑자기 '자고 싶다'거나 '스크류바를 한입 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아이를 찾고자 버스에서 정신없이 내리는 통에 가방도 잃어버린 그녀는
오래전 갑자기 사라졌던 엄마의 연락을 받는다.
"전화 잘못 거셨습니다."
그걸로 또 한 번 끝나버린 인연. 엄마는 그녀에게 엄마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못했고
그녀는 엄마로서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아이를 찾아 헤매지만
여전히 '엄마'라는 정체성 사이를 비집고 나오는 한 인간으로서의 욕망에 스스로 놀란다.
그리고 자위(自慰)한다.
'아이를 찾으면 눈물이 날 거야.'
막연한 관념적 사고 속에서 엄마의 자위[手淫] 장면을 떠올린다.
그리고 자신의 첫 연애, 섹스, 낙태, 임신과 육아를 돌아보다가
한 편의점에서 스크류바를 훔쳐 맹렬히 달아나 차가운 얼음을 혀 끝으로 핥는다.
그 순간 걸려온 남편의 전화는 '굿바이' 당하고
화장실로 들어가는 그녀는 녹아가는 스크류바를 베어 먹으며 자신의 욕망에 빠져든다.
또 다른 소설 <하우스> 속 주인공 열세 살 여자아이는
도박에 빠진 엄마를 여러 가지 시선으로 바라본다.
학교에서는 깔끔한 모범생으로 보이는 아이는
자신이 엄마 대신 여섯 살짜리 아이를 돌보는 현실을
문득 기묘한 느낌으로 받아들인다.
친구 생일파티에 가고 싶지만 집에 홀로 남겨져 있을 동생을 떠올리며 갈등한다.
아빠와 엄마의 지겨운 부부싸움이 동생에게 들리지 않도록 귀를 막아주며 갈등한다.
아이가 파고들 때마다 몽우리 맺힌 가슴이 아파도 참아준다.
때리는 아빠를 말리지도 맞는 엄마를 감싸지도 못하며 갈등한다.
엄마의 도박과 아빠의 폭력을 감추려고 아이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며 갈등한다.
엄마의 폭언을 듣고 현실에서 벗어나고픈 마음에
겨우겨우 뚱땅거릴 수 있는 <즐거운 나의 집>을 치며 갈등하다가
결국 엄마를 외면했다는 이유로 엄마에게 손찌검을 당한다.
하룻밤의 가출 후 집으로 들어가는 순간,
아이는 갈등한다.
현관문을 열기가 겁난다.
아빠의 고함도 없고 엄마의 비명도 없고 동생의 울음도 없는 집.
현관문 저쪽 너머의 세상으로 들어가는 게 망설여진다.
'오늘도 집에는 엄마가 없었다'로 시작해
'오늘은 엄마가 집에 있을 거야'로 끝나는 이 소설 역시
엄마는 어떤 존재여야 하는지를 묻는다.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집과 모순되게 아이는 '즐거운 나의 집'을 열심히 연주하고자 하지만
즐겁지 않은 나의 집이 연주되는 현실에 좌절한다.
아빠의 폭력이 무서워 그나마 아이가 기댈 수 있는 건 엄마뿐이었지만
엄마는 폭력에 전이되어 아이를 학대한다.
엄마의 모성은 어디쯤 있는 걸까.
겨우겨우 '가상'으로만 존재하는 모성.
그것이 과연 가족을 떠받칠 수 있을까?
어쩌면 말도 안 되는 현실을 도피하기 위해 하우스에 드나드는 엄마도
사회에서 강요하는 모성에 지쳐버린 건 아닐까!
끊임없이 사회적 찬양의 대상이 되어온 모성의 현재 안부를 묻는 소설집,
이상하게 꼬여 들쭉날쭉한 ≪스크류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