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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팬지와의 대화
로저 파우츠. 스티븐 투겔 밀스 지음, 허진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9월
평점 :
침팬지와의 대화, 가장 가까운 종(Next of Kin)과 공유하는 삶

과학이라는 명목에 매여 결코 고향에 돌아갈 수 없는 동물들을 위하여

인간과 유전자의 98.4%가 일치하는 침팬지, 그래서 유전적으로
고릴라나 오랑우탄보다 인간에 더 가깝다.
게다가 아프리카 코끼리와 인도 코끼리 사이보다 인간과 침팬지의 사이가 더 가깝다는 것.
정말 놀라운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아동의 심리를 연구하는 임상 심리학자가 되고 싶었던 파우츠는
어느 날 침팬지 워쇼에게 언어를 가르치는 일을 제안받는다.
인간과 침팬지의 유사성을 언어 활동에 관한 실험을 통해 규명하는 것이 그의 임무였다.
맙소사!
언어란 유일하게 인간만이 사용할 수 있는 것 아니었던가?
인간과 다른 동물을 구분 짓는 가장 중요한 특징인 언어 사용을 침팬지가 할 수 있다니?
그런데 파우츠는 워쇼를 통해 인간이 침팬지와 대화를 나눌 수 있음을 깨닫는다.
다만 음성 언어가 아닌 수화를 통해서였지만.

침팬지 언어 사용에 대한 실험은 대부분 교차 양육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즉, 침팬지가 인간 가정에서 어린 시절을 보냄으로써
인간의 생활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실험을 위해 어린 침팬지들은 원래의 가족에게서 분리되어야 했고
교차 양육 프로그램에 사용된 침팬지들은 7세를 전후로
인간과의 삶을 마감해야 했다.
크고 힘센 예측 불가능한 침팬지를 통제하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인간과의 유사성 때문에 침패지들은 오히려 많은 고초를 겪는다.
인간을 대신해 우주 공간에 가는 등 미지의 스트레스 상황에 노출되기도 하고
에이즈나 간염 등의 의학 연구에 사용되어 좁은 철창에 격리되기도 한다.
또한 화장품이나 신약 같은 화학제품의 위험성을 심험하는 대상으로 사용되기도 하는 것이다.
이처럼 고통받는 침팬지를 보며 파우츠는 인간을 위한다는 것의 명분 아래
인간과 가장 가까운 종의 삶을 거리낌없이 파괴하는 과학자들의 노력이
과연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 의문을 갖는다.
그리고 피실험체를 사랑해서는 안 된다는 행동 과학의 제1계명을 어긴다.
워쇼에 대한 사랑을 멈추지 못한 것이다.

파우츠는 제인 구달의 해박한 과학 지식에 감탄하고
이후 침팬지 루시와 워쇼의 친구들을 만났을 때 보인 세심함에 감동한다.
파우츠는 철창에 갇히고 새끼를 빼앗길 위기에 놓인 워쇼를
자연으로 돌려보내려는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제인 구달의 분석, 즉 워쇼가 야생 침팬지 무리에 들어가면 확실히 죽임을 당할 것이며
파우츠의 생각은 그저 위험한 낭만주의라는 의견에 동감한다.

이 책에서 나타나는 침팬지들의 언어 능력 및 학습 능력은 정말 놀라울 정도였다.
수화를 배운 침팬지들은 수화로 꾸준히 대화를 나누고 의사소통을 하고 의사 표현을 한다.
파우츠는 침팬지들의 언어 사용이 단순히 무의식적 행동이 아님을 증명하고자
더욱 엄격한 실험을 진행하고 정밀하게 관찰 및 기록한다.
그리고 언어 학습 능력뿐만 아니라 유희적 행동, 시각화된 콘텐츠의 세밀한 구분,
추상성에 대한 이해 등등 침팬지가 얼마나 인간과 가까운 존재인지를 새삼 확인한다.

무명의 젊은 심리학자가 세계적인 과학자로 성장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과학계에서 영구제명되고 극단적 동물 권리주의자로 낙인찍히는 등의 시련을 거쳐
열정적인 동물권익 운동가가 되기까지의 성장담이 내내 흥미롭게 펼쳐진다.
피실험체를 사랑하게 된 파우츠는 동물 권익이 파괴된 실험실 현장을 생생하게 묘사함으로써
우리에게 과학과 인간성의 역설적 의문에 대한 고민을 던져준다.
과학자 파우츠와 어린 침팬지 워쇼의 운명적인 만남에서 시작되는 이 이야기에
인간과 동물이 함께하는 우정, 용기, 연민 등 모든 게 담겨 있다.
애니멀 커뮤니케이터가 되고 싶어 했던 우리 딸랑구에게도 꼭 권하고 싶은 책.
나도 다시 한 번 읽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