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의 심장
김하서 지음 / 자음과모음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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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의 심장, 환상 공간과 현실 세계의 통로는 어디인가?

 

 


불안을 껴안은 영혼, 불안에 잠식된 영혼... 그 불안의 대상인 존재의 결핍은
아무것도 아니든지 혹은 모든 것이다.
등장인물 모두가 환상에 사로잡혀 헤어나지 못하는 느낌이다.
아니, 때로는 헤어나려고 노력하는 이도 있지만 헤어나고 싶어 하지 않는 이도 있다.

 

 

 


나는 고요한 아침을 즐기고 있다. 하지만 고요한 풍경은 오래가지 않는다.
다섯 살짜리 큰애는 일어나자마자 훌쩍이며 나오더니 "늑대가 손가락을 물어갔다"고 말한다.
오줌 싼 것에 대한 수치심 때문이겠거니 짐작하지만 어쩌면 다른 무엇이 이유일 수도 있다.
큰애의 커지는 울음소리에 둘째마저 잠에서 깬다.
평온한 일상은 박살이 났다. 아내는 아직까지 자고 있나 보다.
그리고 줄리, 아침 내내 꼬리를 흔들며 정신없이 집안을 돌아다녀야 할 줄리는
비릿한 피 냄새와 미묘한 악취를 풍기며 찢어발겨져 있었다. 심장이 사라진 채...
이 상황을 아내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나는 줄리를 검정 봉지에 담아 냉동실에 넣는다.
심장을 찾아 함께 묻어줄 생각이다. 하지만...

 

 

 

 

 


아내는 항상 새로운 취미에 빠져 바쁜 나날을 보낸다.
그녀는 지겨움을 견디지 못하고 새로운 것만 주구장창 갈구했다.
요가를 하고, 한식 요리를 배우고, 꽃꽂이에 빠졌다가 홈패션을 해보았다가,
사진에도 흥미를 보이고 결국 열대어 키우기에 돌입했다.
하지만 그녀는 열대어를 끝까지 돌보지 못했다. 자신이 지쳐 죽을 지경이기 때문이란다.
열대어들은 내가 밥을 주지 않고 물을 갈아주지 않자 모두 죽음을 맞이했다.
그리고 이제 상담심리에 꽂혀 문화센터에 다니고 있다.
프라이팬에서 스테이크가 까맣게 타들어가는 줄도 모른 채 심리학 책을 들여다본다.
문제가 있다. 그녀는 무척 이상하다.

아내는 지하철에서 만났다는 중년 남자를 만나러 야심한 시각에 외출을 하고
빨간 목도리를 하고 도서관 서가에서 와플을 먹는 스무 살짜리 여자애와 친분도 쌓는다.
결국 나는 아내를 미행한다.
아내는 지하철역 화장실에서 괴상한 행색의 옷으로 갈아입고는
중년 남자와 와플 여자와 함께 지하철에서 괴상한 일을 벌인다.
그리고 나는 소동을 일으킨다. 그런데... 아내는 멀쩡하다.

 

 

 

 


아내는 어느 날부턴가 신경증적인 행동을 보이지 않는다.
너무나 멀쩡한 모습이라 지하철 소동이 나의 망상이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그리고 어느 평화로운 저녁, 나는 냉장고가 흔들리는 환각을 본다.
퍼뜩 정신을 차린 나는 냉동실 문을 열고 얼어붙은 줄리를 찾아본다.
하지만 없다. 아내가 빼돌려 줄리의 시신을 자기 식대로 처리한 게 분명하다.
하지만
"여보... 우린 개를 키운 적이 없어...!"
아내의 울음 섞인 목소리에 짐승이 울부짖는 듯한 나는 이명을 느낀다.
자그마치 7년이나 키워왔는데 줄리를 모르다니!

 

 

 

 


현실 세계에 한 발 걸친 채 환상 공간에 살고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기이한 일들이 모락모락 피어난다.
환상곡? 손을 뻗어도 잡을 수 없는 존재들? 망상? 도대체 누구의?

 

 

 

 


<버드>의 그 역시 어디선지 모르게 집 안으로 날아온 새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다.
갑자기 찾아온 질병에 시달리는 아이 때문에 마음이 아픈 아빠, 그.
오늘밤이 고비라는 의사의 말이 있은 후 아내는 아이를 두꺼은 하얀색 포대기를 가슴에 안고
비로소 그와 함께 병원을 벗어난다. 그리고, 새들의 침범이 시작된다.
이들 중 누가 환상의 세계에 있고 누가 현실의 세계에 있는 걸까?
혹시 둘 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것을 보고 듣고 느끼는 걸까?
잔인한 비현실 같기도 하고, 어쩌면 현실 같아서 잔인하기도 한 일곱 편의 이야기들.
환상특급열차에 탈 수 도 있으니 너무 빠져들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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