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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애 ㅣ 김별아 근대 3부작
김별아 지음 / 해냄 / 2017년 6월
평점 :
열애(박열의 사랑) - 영혼의 쌍생아 박열과 후미코의 사랑

고난 앞에서 더욱 강해지는 사랑과 삶에 대한 열망!

박열. 조선인, 무정부의자, 허무주의자.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몰락한 양반 집안에 다름 아닌 환경에 노출되었다.
따뜻한 성품에 자식들에게 헌신적이고 자상한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늦둥이에 막내였지만 호적상 이름인 준식이가 아닌,
세차고 맹렬해 열, 뜨겁고 억척스러워 열이라고 불렸다.
21살이나 차이 나는 큰형은 박열의 공부열을 막지 않고
기꺼이 경성으로 유학을 보내주는 든든한 아버지 같은 느낌이다.
박열은 조선의 호랑이였다. 동족에 대한 끓어오르는 애정으로 포효하고 있었다.


후미코. 무세키샤, 무적자, 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아이.
처제와의 불륜으로 자식들을 팔아넘긴 아버지.
돈 몇 푼을 위해 딸을 매음굴에 팔아넘기려던 어머니.
교묘하고 잔인하게 영혼과 육신을 학대했던 할머니.
그들 밑에서 인생의 부침을 겪는 동안 애정을 갈구하는 여자였으나
박열을 만난 뒤 그의 사상에 동조하고 지원하는 동지가 되었다.

"어쩌자고, 사랑하는가? 불편과 고난과 위험을 무릅쓰고 하필이면 나를?"
박열과 후미코의결합은 조선인과 일본인 그룹 양쪽에서 화제가 되었다.
평등과 해방을 외치는 소위 '주의자'들도 조선인 남성과 일본인 여성의 결합을 백안시했다.
그래서 박열과 후미코는 민족과 국가와 가족이라는 굴레를 전부 벗어던지고
진정한 인간 해방의 길 찾기에 몰두했다.


그러나 그들의 삶이 평탄했다면 소설이 그들을 주인공으로 택할 일도 없었으리라.
그들의 조직 '불령사'는 기본적으로 무정부주의 사상이 지배하였지만
회의주의자에 가까운 하쓰요는 박열의 불같은 정열과 신념을 마뜩잖아 했다.
그러나 후미코는 불나방처럼 무모하지만 물러서지 않는 뚝심의 박열을 진심으로 존경했다.
불령사는 몰래 폭탄을 들여오려는 계획을 추진하다가 실패하는데
이는 하쓰요의 연인이자 소영웅주의와 과시욕에 정신 못차리는 김중한에 의해
공개 모임에서 언급되고 만다. 이로써 폭풍이 몰아친다.
그들 조직이 일본의 법체제에 의해 털리고 만 것이다.
이제 일본 정부는 간토 대학살을 무마할 날조 사건의 대상자로
불령사의 박열을 주목했다.
1927년 9월, 진도 7의 관동대지진 직후 일본 곳곳에서 죽임을 당한 조선인들.
이 힉살에 대한 명분을 세워줄 대상으로 체포된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
그들은 죽음 앞에서도 끝까지 당당하였다.

영화 <박열>이 엄청난 관중몰이에 성공하였는데
박열을 보러 갔다가 후미코에 반해 돌아오는 영화라는 감상이 많은 게 의외였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도 상황을 차분히 주시하고 분석하는 후미코의 시선이 압도적으로 느껴진다.
조선인 독립 운동가와 그의 일본인 아내로 정형화되어 있던
박열과 후미코의 뜨거운 삶과 사랑을 그려낸 장편소설.
작가는 그 두 사람의 시와 수필, 선언문을 소설 속에 재조립함으로써
그들의 삶과 사랑을 생생하게 되살려냈다는 평을 받았다.
후미코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율하며 박열을 마음에 담게 된 시를 소개해드리며
책에 대한 이야기를 마무리하겠다.
나는 개새끼로소이다.
하늘을 보고 짖는
달을 보고 짖는
보잘 것 없는 나는
개새끼로소이다!
높은 양반의 가랑이에서
뜨거운 것이 쏟아져 내가 목욕을 할 때
나도 그의 다리에다
뜨거운 줄기를 뿜어대는
나는 개새끼로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