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혼자가 되다
이자벨 오티시에르 지음, 서준환 옮김 / 자음과모음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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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혼자가 되다, 로빈슨 크루소의 낭만 따위는 없었다!

 

 

 

 

 

 

 

무인도에 불시착한 연인의 자연 적응기 겸 인간적 고뇌를 다룬 모험담.
젊고 건강할 때 한껏 즐기자며 여행을 떠나자고 제안하는 뤼도비크와 그의 연인 루이즈는
요트를 타고 여행을 하기로 결정하고 수천 킬로미터를 항해하며 사랑을 나눈다.
어느 날, 남미 대륙의 끝인 파타고니아와 혼 곶 사이에 있는 출입금지구역인 무인도에 잠깐 들른다.
등산과 암벽등반을 자주 하는 루이즈는 문득 느껴지는 예감에 섬을 얼른 떠나자고 하지만
워낙 긍정적인 성격의 뤼도비크는 날씨가 무척 화창하니 좀 더 머물자고 한다.

 

 

 

 

 

 

 

 

그들이 산책을 만끽하는 사이 날씨가 급변하고 폭풍우에 배가 사라져버려
두 사람은 오롯이 원시인 같은 삶과 맞닥뜨린다.
당장 굶주림을 해결해야 하고 구조되지 못할 수 있다는 불안과 두려움에 맞서기 위해
그들은 열심히 몸을 움직이고 긍정적인 생각으로 스스로를 달래보지만
이내 자연에서의 생활은 악몽으로 변해버린다.
그들이 섬에서 볼 수 있는 거라곤 펭귄과 바다코끼리, 강치, 쥐 떼뿐이다.
한때 연구기지였던 곳에 파리의 보금자리인 척 '40'이라는 이름을 붙인 그들은
굶지 않기 위해 펭귄을 잡아 먹으며 꾸역꾸역 하루하루를 버틴다.
그리고 문득문득 서로를 원망한다.

루이즈는 애초에 이런 여행을 제안한 뤼도비크에게 분노가 치밀고 증오를 느끼고
뤼도비크는 아무렇지 않은 척 가장하면서 루이즈가 좀 더 여유를 가지지 못하는 데 분노한다.
사랑했던 감정이 증오로 변하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게다가 먼바다를 지나는 크루즈선을 본 그들은 순간 그에 대처하는 방식 때문에
급기야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을 맞는다.
루이즈는 침착하게 대응하지 못하는 뤼도비크에게 분노하고
뤼도비크는 자신에게 거칠게 항의하는 루이즈에게 지쳐버린다.
그러던 중 190센티미터나 되는 뤼도비크의 건장하던 몸은 비쩍 말라가고
기침을 할 때마다 가슴에 손을 얹으며 결국 고꾸라진다.

 

 

 

 


겨울이 닥쳐 식량을 구하기도 힘들어지자 루이즈는 가만 앉아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의 사신을 맞을 수는 없다는 결론을 내린다.
그녀는 거동이 힘든 뤼도비크를 버려둔 채 살길을 강구하기로 하고는
그들의 '40'을 떠나 무작정 앞으로 나아간다.
며칠이 지났는지 날짜도 헤아리지 못할 정도로 극한 자연환경에 맞서 한 발씩 옮기던 그녀는
결국 연구팀이 철수한 요새를 발견한다.
그곳에는 먹을 것, 입을 것, 덮을 것, 누울 것, 그리고 씻을 물이 남겨져 있다.
며칠 동안 그곳에서 호사를 누리던 그녀는 결국 뤼도비크를 데리러 '40'으로 돌아가지만...

 

 

 

 

 

 


현대판 로빈슨 크로소 같은 모험소설이지만, 주인공들에게 주어진 환경은
로빈슨 크로소의 외로움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혹독하고 끔찍하다.
추위와 배고픔 같은 육체적 곤혹과 사랑과 증오, 공포 같은 심리적 갈등이
인간의 정신을 어떻게 갉아먹는지 세세히 그려낸 책. ≪갑자기 혼자가 되다≫.

단순한 모험소설이라고 하기엔 아쉽고 스릴러물이라고 하기엔 참혹한 내용이다.
극한 상황에 처했을 때 인간이 과연 어디까지 도덕적, 윤리적 대응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진지한 의문을 다루었다고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작가의 이력이 독특하다. 홀로 세계 일주를 감행한 최초의 여성 항해사 이자벨 오티시에르.
작가는 항해사로서의 경험을 최대한 살려 대서양을 가로지르는 쾌감과
견디기 힘든 생존에 대한 이야기를 빠른 속도로, 더할 나위 없이 생생하게 펼쳐낸다.

뤼도비크와 루이즈는 어떤 결말을 맞이할까.
그들에게 허락되지 않은 고전적 낭만에 눈을 한 번 흘긴다.
그리고 조지 오웰의 ≪1984≫에 나오는 하나의 문단을 보며 경악하는 루이즈가
인생의 중요한 기로에서 어떤 결정을 내릴지 끝까지 궁금했던 책이었다.

 

 

과거를 조작할 수 있는 자는 미래도 조작할 수 있다.
현재를 조작할 수 있는 자는 과거도 조작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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