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 - 교유서가 소설 2022 경기예술지원 문학창작지원 선정작
송지현 지음 / 교유서가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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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지현 소설 겨울엔 김장 여름엔 에어컨 
경기예술지원 문학창작지원 선정작 시리즈



 

 


 

 


김장
송지현 지음, 교유서가 펴냄

 

 


좋은 시절도 나쁜 시절도
때때로는 통과하고 난 뒤에야 알게 된다

 

 


김장철이면 어김없이 할머니의 집으로 간다. 당연히 겨울맞이 연례행사인 김장 때문이다. 외가를 통틀어 회사고 가게고 아무 데도 안 가는 잉여인력이라서 가는 거... 라고 하면 내가 좀 비참하다만, 그게 맞다. 이 김장은 왜 여자들만의 몫이어야 할까. 할머니와 엄마, 나와 여동생. 게다가 나와 메시지를 주고받는 P에게 음식을 나눠 주는 이마저 목포에 사는 고모다. 

 

 


 


이런 여자들의 리그를 이어나가듯 나는 엄마와 주차장 문제로 갈등을 겪던 옆 가게 주인을 떠올린다. 여자다. 월세를 내지 않아도 되는 그 여자와 극적 화해를 이룬 것은 그 여자의 손주 덕분이었다. 엄마가 그 손주한테 정말 예쁘다며 건넨 과자며 사탕이 화해의 물꼬를 튼 셈이다. 먹을 것으로 맺어지는 아름다운 세상이랄까. 


그 곁다리에 암울한 이야기가 순식간에 태연하게 지나간다. 주로 남자들 이야기다. 김장 날 아침 할머니가 산보 길에 맞닥뜨린 옆옆집 손자 성철이는 다리 밑에서 목매고 죽어 있었다. 소를 키우던 옆집 진수네 아줌마의 남편은 죽은 지가 언젠지도 모르게 죽었다. 장롱에 앨범을 남겨둔 삼촌, 지금은 교류도 없는 예전엔 꽤 웃겼던 삼촌은 기관사 일을 하다 하루 동안 자살하려는 사람을 세 명이나 쳐버린 채 입을 닫았다. 이 모든 것은 나의 기억이다. 기억은 항상 선택된 것만 남는다. 김장을 하고 나면 해 지난 김치를 죄다 썰어 만두 속을 만들어 만두를 빚는다. 나의 기억은 이렇게 저렇게 주물거려진다. 그래서 산딸기가 여름에 나는 것인지도 헷갈렸던 걸까. 산딸기가 열리지 않는 계절 겨울은 김장을 기점으로 왔는가 하고 느끼지도 못하는 계절인 봄을 건너뛰어 여름으로 향한다.

 

 


 


겨울을 대표하는 이야기 <김장>을 지나 여름날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난쟁이 그리고 에어컨 없는 여름에 관하여>는 한창 푸릇푸릇해야 할 젊은이들이 축 늘어진 듯한 느낌으로 등장한다. '아티스트 네트워킹'이라는 제법 멋져 보이는 파티는 슬퍼하는 이들의 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그냥 음악을 꽝꽝 틀어놓고 술을 마시는 한낱 놀이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파티를 통해 슬픔을 외면하고 시끄러운 음악 소리에 대화는 단절되고 교류하자고 모였지만 교류는 '술 건너간' 셈이랄까. 여기서 등장하는 의외의 인물이 있으니 제이다. 아티스트도 싫어하는데 이 모임에 나와 있고 내가 참석하는 모임에서 매번 마주치는 제이, 그녀에게 여름은 어떤 식일까. 그녀와 마주치는 나에게 여름은 어떤 의미일까. 난쟁이는 왜 제목에 등장한 걸까. 획 하나만 달라졌을 뿐인데 사람들이 잘 못 알아들어. 언어란 그런 거지.

 

 

 

 


송지현 작가는 두 편의 단편소설 <김장>과 <난쟁이 그리고 에어컨 없는 여름에 관하여>에서 '나'라는 인물을 통해 주인공이자 관찰자적 입장을 취한다. 유년으로의 퇴행을 경계하면서, 함부로 ‘대인’이 되는 것을 거부해온 청춘들이 어떠한 ‘소인’으로서의 실재감을 견디며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지에 주목했다, 는 게 소설에 대한 설명. 설명이 이리 어려울 일이냐, 라고 하지만 적당한 설명임을 인정한다.


‘유년’ 시절 미스터리로 남은 세계와 ‘성년’ 시절 이질적으로 다가오는 세계 사이를 떠돌며, 기억 속 ‘이미지’ 뒤에 가려진 진짜 ‘이야기’들을 추적해나가는 방식의 소설들. 역시 설명이 어렵구나, 라고 중얼거려보지만 맞는 설명이다. 전 세입자가 뚫어놓은 에어컨의 배관 구멍을 통해 나에게 자꾸 다가오는 작은 형체가 내뱉는 말에 뭔가를 끼워맞추려는 내 모습이 허탈해지는 소설, 뷰파인더로 세상을 들여다보는 느낌의 소설, 경기문화재단 선정작 송지현의 "김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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