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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 - 교유서가 소설 ㅣ 2022 경기예술지원 문학창작지원 선정작
김이은 지음 / 교유서가 / 2022년 12월
평점 :
김이은 소설 산책
집이라는 요새에서의 고립과 불안을 산책으로 해소하기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3/0203/pimg_7918311083733286.jpg)
산책
김이은 지음, 교유서가 펴냄
히키코모리 자식을 둔 부모를 안다. 부모의 나이 어언 80이 넘으셨다. 그러니 자식이 50세 가까이 된 셈이다. 그 자식은 20대 어느 날부턴가 방에 처박혀 게임만 하고 식사를 하러 나오지도 않아 밥을 차려 들여주는 지경이니, 부모 속은 썩어 너덜너덜해졌다. 그 자식은 무엇이 불안해 스스로 고립되었을까. 그를 어떻게 산책시킬 수 있을까? 어떻게 밖으로 나오게 할 수 있을까? 부모는 걱정에 땅이 꺼진다. 자신들이 갈 날이 머지않았다며 가슴을 쥐어뜯는다. 난 그저 멍하니 듣고만 있다. 바라만 본다. 해드릴 말씀이 없다.
그렇게 견디다보면 언젠가 편안한 미래가 쥐어지겠지.
그런데 산책으로 모든 게 해결될까. 산책은 또 다른 문제를 낳을지도 모른다. <산책>에서 핏줄로 맺어진 선천적 관계인 자매의 산책은 서로에 대한 묘한 경계감을 드러낸다. 집 자체에 대한 해석이 다르고 집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욕망이 다르다. 하지만 그 해석과 욕망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르게 마련이지 않을까. 내가 가진 게 없으면 내 마음 편하자고, 집은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이면 족하다고 결론 내린다. 내가 뭔가를 가지고 싶다면 내 희망을 높이 사느라고, 집은 재테크의 수단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자매는 한 배에서 났지만 건널 수 없는 경계를 지닌 채 산책을 나가고, 산책을 하는 도중에 미묘한 신경전을 벌이고, 깔끔하지 않게 산책을 끝내려다가 발목잡힌다. 자신들이 해결하기 난감한 문제를 맞닥뜨린 자매, 그들은 과연 삶의 해법을 찾아낼까?
낡고 오래된 동네의 소통 방식이란 무례하고
쌍방 소통형이 아니라 일방 직선형인 경우가 많으며
보통 카더라, 통신으로 삽시간에 퍼졌다.
그렇다면 자연적이거나 선천적이지 않은 관계, 즉 인위적이거나 후천적인 관계를 맺은 사람들은 어떤 모습의 산책을 하게 될까? <경우지에서>의 주인공 이화는 자신에 대해 떠도는 출처 불분명한, 어쩌면 조리돌림일 수 있는 말들에 시달린다. 이화는 한곳에서 지나치게 오래 살았다는 것, 그래서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이 자신도 모르게 부풀려진 채 소문으로 퍼진다는 것, 그래서 누가 누구를 알고 지속적인 관계를 맺는 일이 끔찍하게 여겨진다. 그러다 문득 이런 삶에 반항이라도 하듯 아무에게나 관계를 생성하고자 하는 이화, 그녀의 시도는 일상을 부유하는 삶의 비극에 희망을 안겨줄까? 아니, 어쩌면 그것은 또다른 비극의 탄생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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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삶의 모든 변화의 순간들은
예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고요하게 다가왔다.
세상에 맞서느라고 자신이 만든 울타리에 스스로 갇힌 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집이란 어떤 의미일까? 김이은 작가는 경기예술지원 문학창작지원 선정작 "산책"에서 이를 '일종의 요새'라고 표현했다. 요새 안에서 생활하는 한 방해받을 일이 없다. 이로써 사람들 간의 관계는 점도가 약해진다. <산책>과 <경유지에서>는 집에 갇혀 권태롭고 무기력하게 일상을 영위하던 주인공들이 산책을 통해 잠깐이라도 주변인과 관계를 맺는 순간을 그린다. 자신의 본모습을 잠깐만 감추어도 되는 관계. 어쩌면 자신의 본무습을 잠깐만 드러내도 되는 관계. 하지만 어느 쪽이든 관계는 일시적일 뿐 지속되지 않는다. 혹시 이들은 이런 한시적인 관계를 원한 걸까? 지속성은 버려두고 일시성을 택한 걸까? 거의 모든 인간의 깨달음이란 건 일상과 시간의 힘을 견뎌내지 못하게 마련이었다.
사회적으로 살아가야 할 수밖에 없는 이들의 삶에 대한 방식, 이 와중에 생겨나는 고립에 대한 불안과 관계에 대한 욕망, 온전하다고 믿는 삶에 이르기 위한 자기 위안을 이야기하는 김이은의 소설 <산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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