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에게 가면
설재인 지음 / 자이언트북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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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에게 가면, 설재인의 따뜻한 성장소설





 

세상을 떠난 할머니와 저승사자들의 대화로 시작하는 "내가 너에게 가면". 키득대다가 울컥했다가 어느새 웃고 있는 나를 알아차리는, 단숨에 읽어버린 성장소설, 이라고 적고 보니 좀 오글거리나 싶지만 재밌는 걸 어쩌라고^^

내가 너에게 가면

설재인 지음, 자이언트북스 펴냄

​​

웃는 일이 많고 싶었다.

선생도 아니면서 선생인 척하며 대우받길 원한다고 헐뜯기는 돌봄 교사가 있다. 성주다. 어린 시절 엄마를 잃고 할머니 손에 자라다가 할머니마저 잃고 할머니의 친구 정옥에게 맡겨진 존재. 할머니와 손녀로 살아가는 동안 주변에서는 말이 많았다. 사람들은 성주가 어릴 적엔 듣든 말든 말을 했고, 그녀가 어른이 되어 밥벌이를 할 때는 안 들리게 말을 했을 것이며 정옥의 장례식장에서 상주 노릇을 할 땐 안줏거리처럼 말을 했을 것이다. 말의 주제는 모두 '구실'이었다. 구실이라... 그것을 입에 올리는 사람들은 제 구실을 얼마나 충실히 해냈던 걸까. 어쩌면 성주는 그 구실을 하고자 친절함과 다정함과 열정과 공평함이 자신의 상처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 채 그것들로 스스로를 무장하고 보호하고 있었겠다.

 



 

 

 

엄마를 잃고 삼촌 도연의 손에 자라는 아이가 있다. 애린이다. 만우절을 생일로 삼아야 하는 사연을 가졌지만 누구보다 해맑다. 애린은 모두에게 공평한 성주 쌤이 무척 마음에 든다. 삼촌보다 씩씩하고 눈치 빠르고 애어른 같은 아이. 애린은 삼촌과 쌤을 이어주고 싶은 마음에 자꾸만 부딪힐 일을 만들려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권투선수가 되고 싶은 마음에 슬쩍 가져온 성주 쌤의 깨진 트로피에서 할머니 정옥의 영혼을 보고 만다. 애린은 정옥에게 자기 엄마의 소식을 묻고 답을 듣던 날 펑펑 울고 마는데...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이제는 만질 수도 볼 수도 없는 엄마를 그리워하는 어린 아이인 건 맞구나.

 

 

한편 정옥은 심술궂은 척하지만 멀리서라도 손녀를 지켜보고 싶은 마음을 감추지 못해 자신이 부숴버린 트로피에 깃든다. 비실비실한 수수깡 같은 도연이 맘에 내키지 않지만 어쩌라! 복싱 체급을 유지하기 위해 탄수화물을 거부하는 고집불통 손녀, 딱 쓰러지지 않을 만큼만 먹는 성주에게 일주일에 서너 번 빵을 먹게 할 인간이 도연밖에 없는 걸! 정옥은 자신이 맡이 기른 성주와 삼촌이 맡아 기르는 애린 사이의 묘한 유사점 때문인지 애린에게 점점 애틋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아이의 작은 세계에 낯선 사람들이 생긴다. 

땅에서 솟아나고, 하늘에서 떨어지고, 

강을 헤엄쳐 흠뻑 젖은 채 기어오르기도 하고, 

또 어딘가에서 발을 구르며 전속력으로 달려오기도 한다. 

작았던 아이를 그 사람들이 키운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관습처럼 따라붙는 원칙이란 얼마나 다양하고 또 얼마나 유연해야 하는 것일까. 설재인 작가의 '내가 너에게 가면"은 성주나 애린이나 도연 등 등장인물들이 처했던 오해받고 상처받았던 모든 상황이 혹시 타인이 자신의 원칙을 상대에게 멋대로 갖다 붙였기 때문에 생긴 건 아닌가, 하고 혼자말처럼 묻는다. 남들이 아무렇지 않게 던지는 상처에 우리의 주인공들은 모두 휘청이고 흔들리고 거리를 두고자 한다. 성주는 도연에게 붙은 '임시 보호자'라는 단어가 주는 슬픈 인상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성주 역시 십 년 이십 년을 일해도 자격 미달의 '견습 선생' 취급을 누군가에게서 꾸준히 받을 테니까. 

 

 

비슷한 처지에 있지만 자신의 삶을 충실히 살아내려는 이들은 반짝이는 변칙과 거듭되는 우연, 우연인 척하는 필연들을 마주하며 관계를 맺다가 자신의 세계가 차츰 바뀌는 것을 깨닫기도 전에 흠뻑 젖고 만다. 잘하는 것은 잘하는 대로 더 열심히 해 상대를 기쁘게 해주려는 이들, 못하는 것은 서툴지만 조금 더 열심히 해서 한 발 내딛고 상대와 보조를 맞추고자 하는 이들. 이들의 마음이 참 따뜻하고 수줍고 예쁘다. 하지만 그들의 걸음은 문득문득 제지당한다. 전혀 순탄하지 못하다. 그들은 언제쯤 그들에게 갈 수 있을까. 나의 든든한 아군은 어디 있는지 막 꼽아보고픈 마음 들게 하는 성장소설. 나도 웃는 일이 많았으면 좋겠는 소설. 설재인 작가의 "내가 너에게 가면"이다.

 

 

출판사 지원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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