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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나 아티스트
알카 조시 지음, 정연희 옮김 / 청미래 / 2022년 10월
평점 :
헤나 아티스트, 해방된 나라에서 개인의 독립을 일구는 알카 조시 성장소설
알카 조시의 소설 "헤나 아티스트"의 첫 페이지를 펼치다가 문득 책장을 다시 덮고 추억을 소환한다. 네팔과 티베트를 여행했던 젊은 시절, 산속에서 흐르는 물에 급히 머리를 감는 나를 엄청난 구경거리인 양 쳐다보던 원주민들. 함께 여행했던, 인도에서 추앙받는 시바 신의 이름을 딴 우리나라 시인과 다른 사람들은 모두 잘 지내고 있겠지!
헤나 아티스트
알카 조시 지음, 정연희 옮김, 청미래 펴냄
열세 살 소냐 라다는 혈통적 특징 때문에 마을에서 재수없다며 배척당했고 어머니와 아버지가 죽은 후에는 사람들의 괴롭힘과 거부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곳을 탈출해야 했다. 아, 탈출했다. 그녀는 자신이 태어나기 전 결혼해 마을을 떠난 언니 락슈미의 남편이자 형부인 하리를 찾아나섰고 그를 통해 자신이 언니와 몹시 닮았음을 알게 된다.
자네의 헤나는 기적을 일으키지.
영국이 지배하던 시기, 눈동자가 숯처럼 검은 사람들이 사는 땅 인도에서, 락슈미는 푸른 눈과 하얀 피부를 가지고 태어난 이상한 존재였다. 그녀의 아버지는 인도의 독립을 위해 아내의 장신구까지 팔아가며 헌신했지만 얻은 건 술병뿐이었다. 락슈미는 열다섯 살에 원치 않는 결혼을 하기 위해 가족들에게서 등 떠밀리듯 고향을 떠나야 했고, 2년 반 후 남편에 종속되는 숨막히는 삶에서 벗어나 독립적이고 자유롭게 살기 위해 사스(시어머니)에게서 배운 갖은 지식들을 안은 채 멀리 달아났다.
어느덧 서른 살에 접어든 락슈미는 힌두교의 고위 카스트 가문의 핏줄이었지만 남의 발을 만지며 일하기에 천한 브라만이었다. 다행히 그녀는 창녀들이 임신하지 않게 하는 약을 팔 수 있었고 헤나를 배울 기회를 얻었고 헤나에 재능이 남달랐기에 그 일로 제법 돈을 벌 수 있었다. 사미르는 내게 사업을 키울 기회를 제공했고, 나는 아이가 반딧불이를 잡는 방식으로 그것을 붙잡았다. 기회가 사라지기 전에-잽싸게!-허공에서 낚아챘다.
락슈미의 아버지는 독립운동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문제 인물로 낙인 찍혔지만, 락슈미는 헤나 아티스트로서의 능력을 인정받아 자신이 꿈꾸는 독립에 당장이라도 손이 닿을 듯하다. 그녀는 이제 부모님을 먹여 살리고 보살필 능력이 있지만 그녀가 보내는 소식에 부모님은 반응이 없다. 하지만 모두 괜찮을 거야. 그녀가 짓는 집은 곧 완성될 것이고 부모님을 모셔올 계획이었다. 락슈미의 헤나에는 독특하고 특별함이 있다거나 혹은 미신적 효험이 좋다는 평판을 얻었고 그녀는 헤나 아티스트로 승승장구한다. 한 귀부인의 아들을 중매서는 대가로 궁을 소개받기로 그녀는 문득 자신의 어머니가 했던 말을 떠올린다. 침대 길이만큼만 다리를 뻗어라.
이렇게 모든 일이 잘 풀려가던 그때 락슈미의 삶에 거대한 해일이 밀려온다.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사실, 자신에게 존재조차 몰랐던 여동생이 있었다는 사실, 남편이 모를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가 이미 락슈미의 생각과 행동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 남편과 여동생이 자신을 찾아냈다는 사실, 이밖의 몇 가지 사실... 그것들은 고위층 사람들의 삶의 언저리에서 안 들리는 척 안 보이는 척 살아가던 그녀를 휘청이게 한다. 남편에게서 벗어나 새로운 터전에 자리를 잡고 견고하게 자신의 둥지를 마련했지만 그 견고함은 한순간에 그녀를 옭아매는 감옥이 되는 듯하다. 이 균열의 시작은 어디서부터였을까? 오직 갑작스레 나타난 동생 라다의 느닷없는 임신 때문일까? 락슈미는 라다의 임신 후폭풍을 제대로 감당해낼 수 있을까? 바보만이 물속에 살고 악어의 적으로 남는다.
우리는 다른 누구로 쉽게 교체될 수 있다,는 불안감을 늘 품고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락슈미는 라다를 보며 자신의 지나온 삶, 거부하고 싶었으나 따라야만 했던 나날을 반추한다. 그녀는 과거를 그저 없애고 싶고 벗어나고 싶었으나 오래도록 이어져온 관습과 전통이 한 여인의 힘으로 깨지기가 쉬울까! 나를 보라. 여러 번 싫다고 했지만 내 운명을 바꾸지 못했다.
독립이 모든 것을 바꾸었다.
독립은 아무것도 바꾸지 않았다.
독립이 바꾼 것은 우리 사람들이었다.
인도의 관습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으나 아이러니하게도 전통적인 기운이 강하고 사람들이 옛 인도에 더 붙잡혀 있고 변화에는 덜 열려 있는 곳 핑크시티 자이푸르에 자리를 잡은 락슈미. 불임이었던 그녀가 창녀들의 불임을 돕고, 한편으로는 고위직의 아내들에게는 임신하도록 도우니, 세상의 일이란 참으로 부조리하다. 가진 자들은 자신들의 치부를 가리기 위해 가지지 못한 자들의 약점을 교묘히 이용한다. 그들에겐 죄책감은 우선순위에 들지도 않고 고려대상도 아니다.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자신들의 행동은 그저 옳을 뿐이니까. 결국 피해를 입고 구렁텅이에 빠지는 건 끝내 가난한 이들의 몫이어야 하니까.
계급과 남녀의 지위와 교육과 의료에 대한 접근이 뒤흔들리던 1950년대의 인도는 마침내 영국으로부터 벗어났다. 그리고 여기, 알카 조시의 여성서사 성장소설 "헤나 아티스트" 속 락슈미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삶을 살아야 하는 여자의 신분으로 태어나 남편의 소유물이 된 채 자신의 선택은 전혀 없는 삶에서 벗어나 독립하고자 애썼다. 하지만 단단한 굴레는 벗어버리기란 쉽지 않다. 자신의 신분을 백분 만분 각인하듯이 몸을 웅크리고 숨을 죽이고 마치 외줄타기를 하듯 긴장감을 뿜어내던 그녀의 개인적 독립은 과연 이루어질까. 그리고 진정 독립적인 내 삶이 시작될 것이다.고 되뇌지만 과연 그러할까. 평온하던 삶에 물 한 방울이 떨어져 파장을 일으키듯 우리의 삶은 자칫 방심하면 생각지도 못했던 다른 방향으로 내달릴지 모른다. 숨죽인 채 숨가쁘게 달리기만 하다가 문득 인생의 방향을 바꾸려는 그녀에게 나는 말릭이 된 것처럼 외쳐본다. 즐기세요, 앤티-보스!
출판사 지원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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