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명훈 블랙유머, 우주섬 사비의 기묘한 탄도학
우주섬 사비의 기묘한 탄도학
배명훈 지음, 자이언트북스 펴냄
원기둥 모양으로 생긴 우주 도시 사비는 화성 인근의 스페이스 콜로니다. 화성 침공 계획에 따라 병력 주둔을 목적으로 세워졌으나 침공 계획이 흐지부지되어 그저 그런 도시로 몰락한 사비. 사비에는 군인들이 모여 사는 동네가 있고, 주둔군 병기창에서 나온 중화기를 밀매하는 이른바 유통업자들이 등장했으며, 땅을 사서 돈을 번 지주 세력에, 부패하고 무능하기 짝이 없는 경찰파, 그리고 부두 근처 그러니까 우주 공항 시설 곳곳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주축이 된 신흥부자세력 오목눈이파까지. 제멋대로가 규율인 이 사비에 지구 밖의 사비예술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이 꿈이라는 김구름의 아이디어를 훔쳐 비싼 비행기 값을 치르고 날아온 이가 있다. 이초록이다. 그는 미리 사비에 엉터리 역학으로 돈을 벌어 자리잡고 있던 고모를 통해 관직을 사서 이주를 감행했다. 관직을 사지 않았더라면... 아, 상상만으로도 아찔하다.
많이 듣는다고 꼭 사는 데 보탬이 되는 건 아니었다.
때로는 그것 때문에 인생이 꼬이기도 했다.
사실은 늘 그랬던 것도 같다.
기껏 김구름의 아이디어를 훔쳤으나 엉뚱한 곳으로 이주해버린 이초록은 특별한 꿈도 목표도 없는 나날을 보낸다. 그러던 중 이초록은 기이한 과녁을 발견한다. 인공중력을 만들어내느라 빠르게 자전하는 사비에서 과녁의 중앙을 조준해 성공시킨 흔적을 발견한 것이다. 화성의 시간은 지구 시간보다 2배 느리게 흐른다. 그러니까 화성에서 1년이 지났다 하면 지구에선 2년이 흐른 셈이다. 게다가 콜로니 지름도 다르고 회전 속도도 다른 원통 모양의 사비에서 총격은 꿈도 못 꿀 일. 하지만 부조리하고 위험한 우주 도시로 전락해버린 우주섬 사비에 등장한 스나이퍼의 존재는 한숨만 나오는 사비의 일상을 뒤흔든다. 스나이퍼의 존재가 떠오르자 암살명령이 떨어졌다는 생각에 각 세력은 동요하고 이초록은 왠지 보호본능을 느낀다. 베일에 가려진 스나이퍼 한먼지, ‘탁월하게 빛나는 존재’를 지켜주고 싶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초록의 이 의지는 아마도... 뭐지? 뭘까? 물리학적으로 말하자면, 아니 우주섬 사비식으로 말하자면, 아니 그러니까 꿈을 훔친 자의 심리로 보자면... 혹시 이초록만 아는 걸까?
'어디에나 있지만 왜 있는지 알 수 없는 우산꽂이'라든지, '3층 한쪽 벽은 책장으로 가득했는데, 심지어 진짜 책이 빼곡히 꽂혀 있다'라든지, '우물에서 숭늉 찾는 격인데, 우리가 숭늉 맛집이잖니' 등등 시니컬한 유머가 등장한다. 거기에 옛 시대의 관직명으로 분위기를 띄우고 근대식 도로명에 탐관오리라든지... 게다가 배명훈 작가는 국제정치를 공부했다고 하는데 왜 물리 같은 걸 등장시켰을까. 독자에게 진정한 블랙유머를 선사하기 위해? 아는 사람은 그가 설명하는 물리의 진실 여부를 알 테고 모르는 사람은 그 진실 여부를 모를 테니 말이다. 마치 비가 오지 않는 우주섬 사비에서 사람들이 비처럼 솓아지는 총알을 피하기 위해 우산을 쓰고 다니는 것처럼 말이다.
사비에서는 공권력이 제대로 미치지 않으니 공무원은 놀고 먹는 밥버러지 월급도둑이 되어버렸고 경찰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폭력을 즐긴다. 그 와중에 우주섬 사비 내 여러 폭력 조직은 세력 다툼을 하고, 세력을 유지하기 위해 운명 컨설팅을 받고, 각 조직의 우두머리들이 기둥회의를 함으로써 겨우 평화가 유지되니, 혹시 이것은 화성의 먼 미래 이야기가 아니고 우리 나라 이야기일까?
우주만큼 근원적인 외로움 혹은 물려받은 광기에 몸부림치는 한먼지. 별 관심도 없으면서 좋은 건 기가 막히게 알아보고 이거다 싶으면 앞뒤 가리지 않고 달려드는 과감함까지 갖춘 이초록. 두 사람은 과연 사비의 탄도학을 정복할 수 있을까? 이것이 사회를 꼬집은 것이구나 싶어, 내가 사는 현실에 대해 씁쓸한 기분을 불러일으키는 배명훈의 블랙유머 미래 SF소설 "우주섬 사비의 기묘한 탄도학"이다.
출판사 지원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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