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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너는 무엇을 했는가 ㅣ 그날, 너는 무엇을 했는가
마사키 도시카 지음, 이정민 옮김 / 모로 / 2022년 6월
평점 :
가족이라는 환상을 들추는 반전 미스터리 | 그날, 너는 무엇을 했는가
그날, 너는 무엇을 했는가
마사키 도시카 지음, 이정민 옮김, 모로 펴냄
어느 집에든 고민거리는 있다고 한다. 정말일까? 부를 척도로 삼아본다. 타워팰리스에 사는 이들은 어떨까? 외모를 척도로 삼아본다. 여신미모 남신 미모로 한 비주얼하는 가족은 어떨까? 더 흔하게는 공부를 척도로 삼아본다. 부모가 신경쓸 일도 없이 아이들이 알아서 척척 해내는 가정에 다른 고민이 있을까? 어쩌면 모두 사상누각? 아무리 행복해 보여도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고민거리가 없는 집은 찾을 수 없다는 말은 진실일까? 문득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 첫 문장을 떠올린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나무랄 데 없이 완벽하게 행복하다고 생각했던 가정이었건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음을 알게 된 이가 있다. 가정에 충실한 남편과 반듯하고 상냥한 아이들 때문에 사람들 앞에서 '나는 이렇게나 행복하다고!' 하고 소리치고 싶은 충동을 느끼던 이즈미다.
그가 죽어야 했던 이유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용의자 하야시의 연쇄살인이 벌어지고 있던 마에바야시시에서 중학생 다이키가 사망한다. 고등학교에 합격한 소년은 새벽 2시 경 등록되지 않은 자전거를 타고 거리를 달리고 있었다. 마침 하야시를 뒤쫓던 경찰차와 맞닥뜨린 다이키는 불심검문을 피해 도망을 가다가 주차된 트럭에 세게 부딪치는 사고를 일으켰다. 구급차를 부르고 사고 현장을 검증하느라 상당한 시간이 허비되었고 그 틈에 용의자는 멀리 달아나버렸다. 그리고 다시 발생한 살인사건. 사람들은 장례를 치른 다이키의 가족에게 다이키를 욕하고 비난하는 전화를 걸어댄다. 다이키 때문에 연쇄 살인범을 놓쳤다고 소리쳤다. 다이키 때문에 살 수 있었던 한 여자가 죽었다고 윽박질렀다. 다이키 때문에... 다이키 때문에... 다이키는 그날, 그 시각에 왜 거리에 있었을까?
다이키가 죽은 후 그의 엄마 이즈미는 슬픔에 잠식당해 일상이 불가능한 상태가 되었다. 그저 다이키의 불단 앞에 자리한 채 울거나 울부짖거나 발버둥을 칠 뿐이었다. 자신이 구축해놓은 '더없이 행복한 집'이 부셔지다니. 생각하기도 싫고 있어서도 안 될 일이었다. 며칠 후 다이키와 비밀리에 사귀고 있었다는 소녀가 등장한다 마리카다. 이즈미는 그날, 10시 10분 경에 자신의 귓전을 울렸던 그 짤깍 소리를 기억해낸다. 자전거 자물쇠를 풀고 다이키는 어디를 가려 했던 걸까? 마리카를 만나러 갔던 걸까? 무려 네 시간이나 밖에서 만났다고? 이즈미는 의문을 풀기 위해 노력하다가 또 하나의 몰랐던 진실과 마주한다. '이즈미의 행복한 집'에서 다이키가 답답해했다는 것이었다. 그럴 리가! 말도 안돼!.하지만 어쩌면...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자식을 방해물로 여겼을지도 모른다. 내 그릇된 생각이 다이키를 죽였을지도 모른다. (중략) 내가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아서, 내가 형편없는 엄마라서, 자식을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아서. 전부 내 탓이었던 것이다.
다이키의 누나 사라는 대학교에 입학했지만 즐겁지 않다. 이건 자신의 가족을 향한 냉대적 시선 때문이기도 했지만 거의 엄마 때문이었다. 사라는 동생이 죽었는데도 태연히 대학도 가고 친구랑 놀고 웃기도 하냐는 엄마의 독설을 견디기 힘들었다. 엄마와 함께 있으면 행복해질 권리를 빼앗기는 기분이 들어 사라는 집을 나와 할머니 집에서 살기로 했다. 하지만 나는 언젠가는 진심으로 웃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죄책감 없이 즐거움과 행복을 느낄 수 있게 될 것이다. 엄마와는 다르다. 그렇게 생각하는 자신이 혐오스러워 견딜 수가 없다. 그리고 사라는 뜻밖의 사실을 듣게 된다. 다이키는 마리카와 사귀지 않았다고? 진실이 뭐지?
15년 후, 도쿄의 한 빌라에서 젊은 여성이 살해된다. 그녀에게는 불륜 상대가 있었는데 그의 행방은 묘연하다. 그의 행방을 찾기 위해 경찰이 움직이고 그의 어머니가 움직인다. 그의 어머니 지에는 며느리 노노코를 의심한다. 며느리는 남편이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일상을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고 있고 걱정하는 눈치를 보이지 않았으며 심지어 남편의 넥타이를 가위로 잘라 쓰레기통에 버려두었으니까. 게다가 지에가 노노코에게 전화를 했을 때 남자가 받지 않았던가. 며느리의 불륜 상대일 것이 틀림없다. 며느리가 그 불륜 상대와 아들에게 해를 가한 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이대로 있을 수 없지. 지에는 며느리에게서 손주를 떼어놓기 위해 행동을 개시한다. 하나의 가정이 여기서도 깨져간다. 그리고 이 일은 15년 전의 다이키 사건과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있다.
어릴 적 가정적 불운을 겪었던 미쓰야는 이 두 사건에 투입된다. 맹목적인 사랑과 정신줄 놓아버린 광기에 의문을 표하고 '왜 죽었는가?'에 대한 답을 찾고자 하는 괴짜 형사 미쓰야 슈헤이. 치밀하게 분석하고 행동하는, 그러나 함께 일하는 파트너에게 별로 친절하지 않은 그는 다이키 사건과 도쿄 살인사건의 연결고리를 과연 찾아낼 수 있을까?
아뿔사, 또 당했다. 저 표지를 유심히 보지 않은 탓이다. 아주 평범하다고 생각했던 표지는 뜻밖에도 결말을 암시하는 키였다. 누구나 마음속에 폭탄 하나씩을 품고 산다던 지인의 말이 떠오른다. 그걸 바꿔본다. 누구나 마음속에 괴물 하나씩을 키우고 산다. 행복하고 예의바르고 반듯하고 청순하고 요염하고 상냥하고 외롭고 고독하고 천진난만하고... 어떤 모습으로든 포장 가능한 사람들, 어떤 모습으로도 감춰지는 사람들의 마음이 섬찟하다. 마음이 병든 사람들은 모든 걸 자신의 방식대로 받아들인다. 렌조 미키히코의 반전트릭 추미스 "백광"의 반전 못지않은 반전 미스터리 "그날, 너는 무엇을 했는가". 가족에 대한 관념적 환상을 와장창 부셔버리는 소설이 아닐 수 없다. 마지막에 가서야 뜻밖의 진실을 토해내는 마사키 도시카의 진실 찾기, 그 첫발을 무척 잘 떼었다.
출판사 지원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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