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오렌지
후지오카 요코 지음, 박우주 옮김 / 달로와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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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오렌지, 죽음을 각오한다는 것에 대하여




 

 


 

 


 

어제의 오렌지
후지오카 요코 지음, 박우주 옮김, 달로와 펴냄

 


 

 

읽는 내내 마음이 아팠다. 이미 다 읽고 지나친 료가의 삶을 다시 더듬어본다. 암 환자에 대해 나는 어떤 태도를 취했던가. 그분의 병이 나을 거라고 생각해줬던가? 내멋대로 판단해 그분을 배려해준다는 미명 아래, 말 한 마디를 건넬 때든 언제든 그분이 더는 나을 가망이 없는 암 환자라는 생각으로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대했을까? '병에 걸렸다고 해서 병자처럼 살고 싶지는 않다'는 료가의 말이 가슴에 박힌다. 문득 지난 일을 떠올린다. 하지만 그분을 암 환자로 대하지 않았다고 확언하지 못하겠다.

 

 


 

이 불안감을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까.
비일상적인 장소에서, 비일상적인 일을 하고 있다는 불안감.


 

 


 


 

료가는 그때 그 설산에서 미끄러져 동생과 둘만 남겨졌던 순간, 얼마나 막막했을까. "나는 잠시 죽음을 각오했었어." 진지하고 밖으로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는 성격의 료가가 이런 말을 누군가에게 꺼내놓는다는 것도 참 힘든 일이었겠다. 위험에 처한 동생을 대신해 젖은 신발을 바꿔 신은 료가. 그 때문에 료가의 발가락은 마치 개구리 같다는 놀림을 받을 만큼 모두 하얗게 변색되었지만 그는 절단까지는 가지 않았다고 다행스러워했다. 그리고 그에게 또 한 번의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순간, 그는 또 얼마나 힘겨웠을까. 암이다. 지긋지긋한 암. 무섭고 막막하고 잘라내도 어디선가 스멀스멀 전이해 나가는 그놈!

 

 


 

잡초는 눈에 보였을 때 뽑아두는 게 좋단다.
잡초를 그냥 내버려 두면, 정원은 어느샌가 풀에 집어삼켜지고 말아.

 

 


 


 



인생도 정원처럼 성심을 다하면 마음에 맞게 다듬을 수 있는 걸까. 항암 치료를 받지만 료가의 상태는 점점 나빠지기만 한다. 게다가 가족들과 친구는 자신의 눈치를 살핀다. 분노하고 낙담하고 당혹스러운 와중에도 자신을 신경 쓰는 그들을 보자니, 주변 사람들을 괴롭히는 것이 자신의 병이라는 생각에 료가는 비참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의견이 맞지 않아 싸움이 벌어지기까지 하자 료가는 이런 상황이 껄끄럽기만 한데...


죽음을 바로 코앞에 왔음을 알게 되면 나는 무슨 일을 할까, 생각해본다. 료가는 심근경색을 일으켰던 할아버지가 왜 그리 서둘러서 울타리를 만들었는지를 떠올린다. 자기가 곧 이 세상에서 사라질 걸 알아서, 그래서 이 튼튼한 울타리를 만든 거야. 앞으로 살아갈 할머니를 보호하려고. 할아버지의 마음을 이제야 겨우 알아챘지만 더 중요한 일이 있었다. 자신이 제대로 살아왔음을 깨달은 것이다. 나는, 나답게 살아온 것이다.

 



 


 

 

 


바쁜 나날 속에서 투병 생활에 힘을 보태준 동생, 어느 때건 한결같은 사랑을 베풀어준 엄마와 할머니, 곁에 있겠다며 고향으로 돌아와준 친구, 변함없이 자신을 따르는 알바생까지, 료가는 그저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마지막 순간, 사람은 오직 하나의 감정만을 지닌 채 떠나는지도 모른다. 너무 담담해서 더 슬펐던 이야기. 좋은 사람에게도 불행은 찾아올 수 있다는 현실 자각이 이루어진다.

죽음을 선고받았을 때 나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치료를 받는 동안 나는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모습으로 지낼까. 그리고 나의 마지막 모습은 어떠할까. 혹시 내게도 료가처럼 돌아볼 색깔이 있을까? 오늘을 무사히 보낸 데 대해 감사의 마음을 갖게 하는 소설, 후지오카 요코의 "어제의 오렌지"다.

 

 


출판사 지원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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