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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의 세계
고요한 외 지음 / &(앤드) / 2022년 4월
평점 :
비밀스럽고 신비한 새로운 세계, 2의 세계

'1등만 좋아하는 세상'이라는 말대로라면 우리는 숫자 '1'을 엄청나게 좋아하겠다. 난 '1'보단 '3'이 좋다. 왜 좋은지 이유도 없이 좋다. 위아래로 안정감 있는 모양이라 좋은 걸까? 똑같은 숫자를 180도 회전해 붙여놓으면 '8'자가 되니 좋을까? 그럼 나는 '8'자를 좋아하는 걸까? 아닌데... 그런데 여기, 1도 아니고 3도 아니고 8도 아닌 '2'들이 모인 세계가 있다. 1도 못 되는 2, 3도 안 되는 2, 8이 되려면 4번이나 필요한 2 말이다.
2의 세계
고요한, 권여름, 김혜나, 류시은, 박생강, 서유미, 조수경 지음 | 앤드 펴냄
왜 일곱 명의 작가들을 모아 하필이면 '2'라는 숫자를 테마로 잡았을까? 너무 익숙한 1을 피하려다 2를 잡은 걸까? 3으로 가기엔 너무 벅찼던 걸까? 나는 왜 자꾸 질문을 던질까? 알고 보니 2는 1의 문을 열심히 두드려야만 만날 수 있단다. 2를 만나기란 하나하나 깨나아가야만 가능한 일인가 보다.
1의 문을 두드리면 마침내 만나게 되는
무수히 많은 '2'의 이야기
하긴 모노레일을 타고 멀리 갈 수는 없지.
출발점과 종점이 같으니까.
돌고 돌아도 그 자리니까.
고요한의 <모노레일 찾기> 속에서는 다가가고 싶어도 다가갈 수 없는 현실이 그려진다. 전 여친을 향해 빙글빙글 돌고 있는 남자의 마음. 전 여친의 남편이 죽었어도 그의 사랑은 끝내 이루어질 수가 없다. 전 여친의 마음은 이미 궤도를 이탈했고 그가 올라탄 모노레일은 출발점과 종점이 같아 돌고 돌아도 그 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그 역시 이탈하지 않는 한, 달리 방향을 바꿔 나아갈 수 없음이다.
특별한 게 더 좋았다.
권여름의 <시험의 미래> 속에서는 1을 향한 치열함과 통쾌함이 최종적으로 숨겨진 2의 존재에 허를 찔린다. 파이널 점독관으로 낙점된 구은열은 새로 접한 세상에서 자신이 1인 줄 알고 특별한 기분에 휩싸인다. 하지만 그가 마지막에 마주한 세상은, 구은열은 띄고 결코 띄고 1이 띄고 아니다 마침표 였다. 그는 엉겁결에 1의 반열에 올랐다고 생각했지만 자신을 통제하는 제2의 방이 존재함을 통렬히 깨닫는다. 세상을 진짜로 움직이는 건 사실 카운트 되지 않는 사람들이잖습니까. 이렇게 제2의 방에서 숨어 있는 자들. (중략) 숨어 있기를 자처한 자들. 곰곰이 생각하니, 정말 무서운 주제가 아닐 수 없다.
삶은 누구에게 나 링이나 마찬가지잖아요.
우리는 비록 링에서 싸우듯이 살아가고 있지만,
잠깐씩 앉아 쉬어갈 구석 자리가 필요하죠.
김혜나의 <코너스툴>에서는 편지체를 빙자한 고백이 펼쳐진다. 편지 속 독백이 길어질수록 감춰져 있던 진실이 드러난다. 책방 '코너스툴'을 운영하던 네 아버지에게 나는 쉬는 자리가 되어주고 싶었다, 이것은 내가 '이반'인 것과는 무관하다, 아니 어쩌면 무관하지 않을 수도 있다... 진실은 이렇게 또 감춰질 듯 감춰지지 않을 듯 줄타기를 한다.

이 세상에는 우리가 모르는 또 다른 세계가 있어
아이돌 쇼케이스에서 만난 생면부지의 두 사람이 나누는 '덕질'과 익명성 속 2차 세계를 그린 류시은의 <2차 세계의 최애>, 퍼펙트 도플갱어를 만나 '2의 감옥'에 떨어진 2% 부족한 남자와 갑자기 사라진 그 남자를 찾으려는 여자친구가 만난 천공의 존재를 이야기하는 박생강의 <2의 감옥>, 구조조정으로 퇴사하게 된 미진이 자신과 닮은 두 사람을 통해 느끼는 감정들을 다룬 서유미의 <다음이 있다면>, 죽음과 만남을 통해 긴밀히 연결된 두 개의 시공간을 내세운 조수경의 <이야기 둘>까지 총 일곱 가지 이야기가 "2의 세계"에 담겨 있다.
2차에서는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는 걸, 나 역시 부정하지 못한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지금 우리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있다는 것 역시 인정한다. 어쩌면 판타지 같은 이야기가 쏟아지는 일곱 작가의 테마소설집 "2의 세계"를 통해 이쪽에서 저쪽까지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를 신비로운 삶의 단면들을 만나보자.
출판사 지원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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