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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완벽한 멕시코 딸이 아니야
에리카 산체스 지음, 허진 옮김 / 오렌지디 / 2022년 1월
평점 :
나는 완벽한 멕시코 딸이 아니야, 칭가오(젠장)
나는 완벽한 멕시코 딸이 아니야
에리카 산체스 지음, 허진 옮김, 오렌지디 펴냄
새삼 반하게 되는 글이 있다. 내용에 관계 없이 읽는 내내 신이 나서 읽게 되는 글. 에리카 산체스의 "나는 완벽한 멕시코 딸이 아니야"가 그렇다.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의 "아메리카나"라든지 "보라색 히비스커스"를 읽으며 느꼈던 감정을 다시 한 번 느꼈음이다. 섬세한 감정선에 공감하고 동조하고 응원한다. 성장소설이지만 이미 성장을 마친 글, 이라는 나름의 언어 유희도 해본다. 아, 그러고 보면 나는 제3세계 문학이 맞는 것도 같고 말이지.
가끔은 엄마가 좋지만 가끔은 엄마가 더 밉다.
대체로 나는 두 감정을 동시에 느낀다.
나는 뭐가 잘못된 걸까?
서울에만 가면 저절로 새로운 인생이 펼쳐질 거라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 나를 비롯한 학생 대부분이 인서울을 위해 노력했고 그 꿈을 이룬 이를 부러워했다. 재학 중이나 재직 중 에는 또다른 꿈을 꾸는 이들을 보게 되었다. 인 뉴욕, 뉴욕에만 가면 모든 게 해결될 거라고 여기는 이가 제법 많았다. 막연히 뉴요커를 꿈꾸기도 했고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우는 이도 있었더랬다. 물론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면 내가 만나게 될 세상은 마냥 달콤하기만 할 것 같다. 모르는 대상에 대한 상상의 나래는 마냥 그럴싸하고 멋지기만 할 것이라는 데서 우리의 뇌적 상상력이 멈추게 마련일 테니까.
그런데 우리가 자꾸만 울타리를 벗어나려고 하는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는 게 혹시 인지상정일까? 아니지, 사실 울타리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이유 중 주된 것은 가족관계에서 비롯되는 게 아닐까 싶다. 지금 머무는 곳을 안전하다고 여기는 게 아니라 속박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그리고 어느 정도 비밀을 가진 가족들의 조바심이나 조심스러움을 때론 독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이겠다. 마치 훌리오를 단속하는 아마처럼, 마치 가족들이 어떤 생각을 하며 사는지에 관심 없어 보이는 아파처럼.
옷장에 검정색, 회색, 빨간색 옷밖에 없는 열다섯의 소녀 '나' 훌리아는 엄마한테서 말크리아다, 그러니까 버릇없는 딸이라고 불린다. 사실 진짜 무례한 백인이 되고 싶다는 게 훌리아의 진심이다. 어른들의 눈에는 못된 아이로 비칠 것이었다. 아니 어쩌면 싸가지 없고 반항심 가득한 아이, 혹은 카브로나(못된 것)가 맞을지도 몰랐다. 디오스 미오(세상에). 나는 성장하고 탐험해야 하지만, 그럴 수 있도록 부모님이 가만히 놔두지 않을 것이다. 왜 인생은 늘 내가 출 수 없는 퍼즐처럼 느껴질까?
훌리아는 언니랑 늘 비교당한다. 말 잘듣는 언니에 비하면 매우 까다롭고 무척 이상한 아이다. 그런데 부모님은 일만 한다. 외출도 절대 안 하고, 서로 말도 거의 안 한다. 그런데 내가 어떻게 해야 하지? 미안하다고 말해야 하나? 정상이 아니라서 미안하다고? 이렇게 못된 딸이라서 미안하다고? 내 삶을 싫어해서 미안하다고? 내 삶은 앞으로도 계속 이런 식일까? 그리고... 언니는 죽었다. 말 잘듣는 딸이었던 언니 올가는 정말 착실하고 완벽한 딸이었을까? 죽기 직전 올가는 임신 중이었는데? 게다가 어이의 아버지는...!
넌 네 인생이 싫었던 적 있어?
난 그렇거든. 그러니까, 항상 말이야.
벽. 벽. 벽. 항상 막다른 벽이다. 내 인생이 그렇다. 대학교도 가지 않고 부모님과 함께 사는 언니는 사회적인 시선으로 보자면 완벽한 멕시코 딸이다. 그 덕분에 뉴욕으로 가고 싶어 하는 훌리아는 완벽하지 않은 딸이 되고 말았다. 완벽한 멕시코 딸인 언니의 갑작스런 죽음은 완벽하지 않은 딸 훌리아에게 혼돈을 일으킨다. 훌리아가 알고 있던 언니는 분명 아름답고 완벽했지만 언니의 죽음에 왠지 이상한 느낌을 받아 언니의 생전 삶을 추적하던 훌리아는 결국 아마와 아파가 말하지 않았던 과거에까지 이르는데...
지금도 안 괜찮고 앞으로도 절대 안 괜찮겠지만
다 괜찮아질 거라고 말해 주고 싶다.
미국의 멕시코 이민자 가정에서 자란 작가 에리카 산체스의 자전적 이야기가 담긴 "나는 완벽한 멕시코 딸이 아니야"는 '겨우' 이민자로만 자신들을 받아들이는 사회에 스며들고자 열심히 노력하고 좌절도 겪지만 끝내 희망을 잃지 않는 용감한 소녀의 성장 소설이다. 완벽한 멕시코 딸인 언니의 비밀을 혼자서 짊어진 채 가족간의 관계를 조율하는 영특한 소녀. 훌리아. 소설 속에서 내내 작가가 되고 싶다고 외쳤던 소녀의 꿈이 이루어진 데 박수를 보낸다. 에리카 산체스, 당신이 작가가 되어 정말 내가 고맙네요.
전미문학상 최종 후보작에 오른 데다 11개월 연속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의 원작인 "나는 완벽한 멕시코 딸이 아니야". 세상에 대해 시선을 넓히고 자신을 서서히 그리고 기꺼이 바꿀 줄 알게 된 그 기세를 몰아, 형형색색으로 수놓아질 훌리아의 삶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