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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 스톡홀름신드롬의 이면을 추적하는 세 여성의 이야기
롤라 라퐁 지음, 이재형 옮김 / 문예출판사 / 2021년 2월
평점 :
절판
17일, 모험 같기도 하고 탈주 같기도 한 납치 사건을 파헤치는 시간!
아무 말 없이 그런 일을 수행했다고 한들 어떻게 이걸 스스로 선택한 일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일까요?
당신은 납치범들이 만들어낸 스토리에 홀린 사람들을 더 이상 부드럽게 대하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처녀'가 머리 일곱 개 달린 코브라에게 납치당했다는 이 매혹적인 시나리오에 독자들과 시청자들이 정신을 빼앗겼다고 주장했지요.
미국 언론재벌의 상속자,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의 손녀 퍼트리샤 허스트가 좌파 무장단체 SLA에 납치되었다. SLA는 자신들이 납치범임을 감추지 않았으며 허스트가에 가난한 이들에게 먹을 것을 제공하라고 당당히 요구한다. 그리고 겨우 두 달 뒤 퍼트리샤는 타니아로 개명하고는 무장단체의 일원으로서 총을 들고 은행강도사건을 연출한다.
타니아는 SLA가 FBI에 의해 무력진압된 후, 도주한 지 1년 4개월 만에 체포되었다. SLA와 타니아, 백인 몇 명과 백만장자 한 사람의 체포 과정에서 숱한 피해가 발생했지만 주변의 피해에 아무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오히려 젊은이들은 무참하게 죽어간 이들에 대해 안타까워했고 FBI를 책망했으며 SLA 지지 시위를 벌였다. 이 사태의 주범이었던 타니아는 훗날 법정에서 자신이 행했던 그 모든 일이 SLA에게 세뇌되어 한 행동이라며 자신의 무죄를 주장한다.
그는 우리가 갖고 있는 시간이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그 방법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저에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중략) 저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어요. 타협은 일절 없습니다.
이는 타니아가 체포된 후 한 말이다. 그녀는 과연 무죄인가, 유죄인가? 혹시 타니아와 퍼트리샤 중에서 과연 누가 진짜일까? 그런데... 만일 둘 중 아무도 진짜가 아니라면?
부모는 자기 자식을 아무 조건 없이 사랑하지는 않습니다. 자식이 부모가 마련해놓은 정체성을 거부하고 다른 정체성을 가지려고 하면 부모는 자식을 더 이상 사랑하지 않아요.
1970년 베트남전쟁 반전시위에 참여한 활동가이자 화려한 언변과 날 선 비판으로 주목받는 페미니스트 진 네베바는 아르바이트생 비올렌과 함께 퍼트리샤의 사건을 추적한다. 비올렌은 퍼트리샤 허스트에 관한 갖가지 기록은 물론 녹음 파일까지 모두 수없이 재생을 거쳐 그에 관해 상세히 분석하고 기록한다. 처음에는 자신 나름대로의 느낌을 적어 나가던 비올렌은 어느새 자신도 모르는 사이 네베바의 비위를 맞추고 만다. 비올렌은 네베바를 대변하면서 자신의 품격이 높아진 것처럼 굴었고 이는 어떤 사람이 다른 누군가의 영향하에 있다면 그 다른 누군가는 이 사람에게 강요할 필요조차 없다는 사실의 방증이나 다름없었다.
비올렌은 성장하기를, 즉 여자가 되기를 거부하였으며, 네베바는 퍼트리샤의 전향에 대해 일종의 생존 전략이라고 변론하고자 했다. 네베바는 퍼트리샤가 SLA 대원들과 함께 싸우겠다는결심은 하지 않았을 거라고 보고서의 결론을 구상했다. 네베바는 비올렌 곁을 떠났고 비올렌은 역시 이번에도 자신이 모르는 사이 새로운 비올렌에게 영향력을 행사했다.
저자 롤라 라퐁은 "17일"이라는 시간 동안 퍼트리샤의 납치 사건을 말하고 싶었을까? 혹시 비올렌에게 벌어진 일을 통해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한 걸까? 더불어 비올렌과 그 비올렌들에게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말하고자 한 것일까?
만들어진 진실을 도발하는 실화소설 "17일"은 여성의 결단이 갖는 힘과 그 힘의 변화와 전승 과정을 그리고 있다. 네베바와 비올렌이 ‘퍼트리샤 허스트 납치사건’의 전모를 해석하는 과정을 통해 여성이 돌봄의 주체도, 유순한 자녀도, 페미니스트의 심볼도 아닌 자기 자신으로서 목소리를 내는 것의 중요성을 일깨운다는 해설은 너무 어렵다. 그저 나에게는 우리가 눈치 채지 못했지만 어쩌면 일상에 만연해 있는 현상인 스톡홀름신드롬에 대해 생각할 바를 던져주는 롤라 라퐁의 소설 "17일"이다.
출판사 지원도서의 간략소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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