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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구문 ㅣ 특서 청소년문학 19
지혜진 지음 / 특별한서재 / 2021년 4월
평점 :
시구문, 나는 이 문을 나감으로써 죽지만!
죽음과 가까운 문인데 오히려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기분이었거든.
무당인 어머니를 부끄러워하고 원망하던 기련은 편찮은 아버지와 어린 여동생 백희의 생계를 책임지는 소년 가장 백주와 시간을 보내며 가슴속 울분을 달랜다. 많은 이가 흔히 그러하듯 기련 역시 백주와 그 가족은 안쓰러워하며 친절히 대하면서도 정작 자신을 책임져주는 피붙이인 어머니에게는 못되게 군다. 어른들의 삶도 불안하던 정묘호란, 병자호란이 있던 당시 아이들의 삶이야 더 말해 무엇하랴. 아이들은 괴롭고 힘든 삶을 이겨내려 애쓰지만 그들의 운명은 버겁기만 하다.
그러던 어느 날, 기련은 개울가 징검다리를 건너다 시비가 붙어 아버지의 유일한 유품을 개울에 빠뜨리고 만다. 기련은 그것을 잡으려 개울에 뛰어들었다가 차가운 물에 정신을 잃었고 그런 그녀를 소애 아씨와 몸종 향이가 구해준다. 소애와 기련과 향이는 신분의 벽이 무색하게도 왠지 모를 공감으로 서로를 받아들인다.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를 계속 바라봤다. 아씨의 머리끝에서 흩날리는 붉은 댕기가 나에게 속삭이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가슴이 뛰었다.
그 즈음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인조는 시구문을 통해 피란을 갔다. 누가 짐작했을까, 한 나라의 왕이 시체가 되어서야 지난다는 그 문을 통해 꽁지 빠져라 도망갔을 줄을. 나중 다시 궐로 돌아온 인조는 이 황당한 피란과 삼전도의 치욕에 대한 분풀이를, 직언하던 신료에게로 돌려 역적의 누명을 씌워 모조리 참수한다. 누명을 쓰고 죽은 이들의 자식 중 소애가 있었다. 결국 소애는 누명을 씌운 김 대감 집의 몸종이 되고 만다. 기련은 소애를 만나기 위해 백희와 함께 김 대감 집으로 향하지만, 그곳에서 오해와 누명을 쓰고 크나큰 고초를 겪는데…….
산다는 건 뭘까. 아픔 없는 사람이 없다지만 그 크기와 받아들이는 가슴이 다 달라서 누구나 공평한 크기의 아픔을 느낀다고 말할 수 없었다. 다른 누군가가 나였다면 어땠을까. 소문이 사실은 아니니 어머니를 이해하고 감싸 안았을까. 저질러진 운명 앞에 순순히 머리를 조아렸을까.
어머니가 숨겨온 비밀을 알게 된 기련은 그제야 자신을 위해 늘 기도해준 사람이 어머니뿐이었음을 깨닫는다. 드디어 기련은 백희, 소애와 함께 시구문을 나서기로 결심한다. 그 문을 나간다는 것은 죽는다는 뜻, 시구문은 결국 아이들이 치러야 할 성장통을 향한 장치였던 셈이다.
백주야, 이 세상에 슬픔이 없는 사람도 있을까?
언니, 그런 사람은 없어. 그것도 몰라?
우리는 서로에게 묻지 않았다. 우리가 가진 슬픔이 무엇인지, 우리는 왜 아무것도 할 수 없는지 그리고 너도 나만큼 아픈지.
이제 다시는 울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는 세 아이들 앞에, 과연 어떤 인생이 펼쳐질까? 도전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진실을 알지 못하면 평생을 비뚤어진 생각을 품은 채 살아갈 것이었다. 가족과 이별하고 또 다른 가족 같은 존재들과 함께 더 자유로울 수 있는 길을 나서며 서로 바라보는 그들의 삶에, 따스한 바람이 계속 불어주기를 책장을 덮으며 바라본다.
운명에 무릎 꿇지 않으려는 조선시대 소녀들의 여정! 또 다른 시작이자 출발점인 시구문을 나선 아이들의 이야기 지혜진 작가의 청소년 문학 "시구문"이다.
리딩투데이 신간살롱 지원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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