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비극의 탄생 - 50인의 증언으로 새롭게 밝히는 박원순 사건의 진상
손병관 지음 / 왕의서재 / 2021년 3월
평점 :
비극의 탄생 박원순 사건
2차 가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에 행여 쥐뿔만큼이라도 걸릴까 두려워 어떤 사건에 대해 섣불리 입을 열거나 손가락을 놀리지 못한다. 2차 가해라는 논란으로 책잡히면 신상은 순식간에 까발려지고 당사자는 마치 애초에 구렁텅이에 처박힌 쓰레기 인생을 살아내는 사람이었던 것처럼 난도질당한다. 그로써 ‘나’는 새로운 ‘나’로 거듭난다. 내가 모르는 나 말이다.
그래서였다, 손병관 저자의 "비극의 탄생"을 손에 쥐기가 무척 껄끄러웠던 이유는. 이 사건이 터졌을 당시 사실 충격도 컸지만,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자살로 당연히 여자의 입장이 훨씬 보호받을 것이라고 여겼기에, 언론의 집중 취재에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내가 '여자의 입장이 훨씬 보호받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 자체가 참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만큼 성범죄 관련 사건은 이렇게 생각해도 저렇게 생각해도 시원한 답은 없다. 답은 스스로를 세뇌하기 전의 당사자들, 오염되지 않았을 당시의 그들만이 알 뿐이다.
구체적인 피해 사실을 가해자가 인정하거나 또는 법정에서 확정되지 않는 한 진실을 다투는 사람은 고소인으로 호칭해야 한다는 생각에도 불구하고 손병관 저자의 "비극의 탄생"에서 박원순 전 서울시장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는 비서는 피해자로 호칭되었다. 이는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자살했기 때문이겠지만, 어쨌든 그는 자신의 죽음으로 ‘공소권 없음’으로 사건의 사법적 결론을 내버렸기에 ‘싸늘한 여론’을 만드는 데 스스로 결정적 기여를 한 것이다. 서양에서는 혐의를 받는 자살자는 대우를 못 받는 데다 심지어 '죄를 인정하는 것'으로 취급되기도 한다. 물론 동양에서는 케이스바이케이스지만. 일단 고소인은 피해자로 지칭되었고 박원순 사건에 대해 증언할 사람들은 직급 및 소속을 밝히라는 엉뚱한(!) 요청으로 박원순 전 서울시장을 옹호하거나 대변하는 입장의 증언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20명'이라는 여성단체의 발표와 피해자 지목으로 경찰서를 다녀온 이들은 하나같이 잔디의 진술을 부인했고 심지어 전화 대질심문을 벌이며 잔디의 말에 반박하기까지 했다.
고소인 잔디는 평소 시장을 직접 챙겨야 하는 일은 스스로 나서곤 했다는 것이 주변의 평가다. 사진이며 동영상 등에서 박 전 시장과 함께하는 잔디는 피해자로 볼 수 없는 행동을 계속했고 이런 점이 확연히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범인 100명을 놓치더라도 피해자 한 명의 인권을 놓치면 안 된다'는 맥락의 일처리는 무너졌다. 이는 페미니즘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한쪽의 사망을 죄의 실토로 간주하는 것은 무례하기까지 했지만 죽은 자는 자신의 변호를 포기한 셈이니 감수해야 할 부분은 있는 것이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범죄 사건에 대해 논란이 되는 부분들 중 몇 개 보자면 다음과 같다. 일단 ‘셀카 밀착’이다. 피해자는 셀카를 찍는 과정에서 성희롱이 있었다고 주장하지만 ‘셀카 찍는 일들을 한 달 동안 못한다고 생각하니 너무너무 아쉽고 슬프다’라고 손편지를 쓴 사람이 할 말은 아닌 듯하다. ‘무릎 호’ 역시 피해자의 주장일 뿐 증거를 찾지 못했고 인권위 보도자료에서 이 부분은 흐지부지되었다. ‘내실에서 안아달라’는 피해자의 주장에 대해 국가인권위는 입증 자료가 없어 사실로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텔레그렘 문자와 속옷 사진 전송’은 박 전 시장이 잔디를 대화방으로 초대한 사실이 확인되었고 늦은밤 부적절한 메시지와 사진, 이모티콘을 보낸 사실은 인정된다고 보았다. 그러나 대화의 빈도와 목적, 내용은 모두 베일에 싸여 있다. 또한 박 시장은 불특정 다수의 지인에게 러닝셔츠 사진을 보낸 적이 있음이 밝혀졌다. 여기서 쟁점은 피해자가 받은 사진이 얼마나 더 노골적이고 성적인 의미를 내포했는지겠다만, 결국 이 역시 확인되지 못했다. 이후의 쟁점들 역시 주장은 있으나 확실한 증거는 없다는 문제점을 보인다. 이 모든 의문 제기에 던져지는 반박성 질문은 ‘그렇다면 박원순은 왜 죽었느냐’이다. 그것밖에 없나?
일부 취재원이 전한 말이 남았다. 박 전 시장이 ‘실수가 있었다. 남녀 사이에 은밀한 게 있는데 그걸 문제 삼으면 문제가 된다’라는 우려를 표시했다는 것. 딱 이대로만 보자면 뭔가 있었다. 그런데 그걸 문제 삼으면 문제가 된다. 문제 삼지 않으면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라는 말?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이렇게 쓰자니 나 지금 누구 편을 드느냐고 돌 던지는 이들도 있겠구나 싶지만, 어쩌랴. 손병관 저자의 “비극의 탄생”에서 제시한 의문점들에 대해 속시원한 해명을 해줄 수 있는 분은 언제든 환영이다.
'미투'란 '나도 당했다'고 당사자가 자신의 삶을 걸고 고발하는 일이다. 증거가 부실해도 시민사회와 사법부가 그 진정성을 수용하려는 것은 거기에 걸린 삶의 무게 때문이다.
사건 수사 중에 법원은 박 전 시장 핸드폰의 포렌식을 중단하도록 하였는데, 이에 대해 신속한 진상규명을 위해 피해자의 핸드폰을 수사기관에서 포렌식해 증거를 찾자는 의견이 나왔다. 상대의 핸드폰에 있는 성추행 증거라면 피해자의 핸드폰에도 있어야 한다는 게 그 주장의 근거다. 하지만 이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는 ‘증거 재판주의’를 포기한 것일까? 더불어 성폭력 대응 매뉴얼에 ‘피해자가 원하지 않으면 가해자에게 확인하지 않는다’는 조항도 삭제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의견에 동의하는 바다.
박원순 사건 혹은 잔디 사건이 어디까지 진행되었는지조차 관심 두지 않았던 나. 며칠 전 재보궐선거를 치렀고 오세훈 후보의 당선이 마치 박원순 시장에 대한 심판인 것처럼 구는 언론은 한심하다. 오세훈 서울시장 당선자가 잔디를 면담했고 잔디는 곧 복귀할 거라는 기사도 나왔다.
“비극의 탄생”을 읽는 내내 나는 그저 ‘명확한 진실’, 그것만 뚝 떨어져나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손병관 저자가 박원순 전 시장의 행보에 '가정'을 입힌 부분은 문제의 소지가 있어 보인다. 잔디의 친구가 확인했다는 메시지를 배제한 것 역시 정당해 보이지는 않는다. 당사자 죽음으로 다 끝나버린 사건, '50인의 증언으로 새롭게 밝히는 박원순 사건의 진상'을 담았다는 "비극의 탄생". 손병관 저자의 취재에도 불구하고 의혹은 여전히 풀리지 않았고 진실 또한 속시원한 해장은 되지 못했음이다. 여기에 강준만 교수와 손병관 저자의 치고받고가 있어 공유하며 이 글을 마무리한다. 판단은 여전히 독자의 몫이다.
http://www.joongboo.com/news/articleView.html?idxno=363480121
http://www.joongboo.com/news/articleView.html?idxno=363480510
리딩투데이 신간살롱 지원도서*
#비극의탄생 #손병관 #왕의서재 #한국정치 #박원순 #충격증언 #반전 #성추행 #성희롱 #네이버독서카페 #리딩투데이 #신간살롱
#북리뷰 #북스타그램 #책스타그램 #책길 #겉핥기#bookstargram #bookish #booklover #선팔환영 #위로 #공감 #글꽃송이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