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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난 게 범죄 - 트레버 노아의 블랙 코미디 인생
트레버 노아 지음, 김준수 옮김 / 부키 / 2020년 10월
평점 :
품절
트레버 노아 자전적 에세이 태어난 게 범죄
웃지도 못하겠고 울지도 못하겠는, 트레버 노아의 기막힌 이야기
여섯 살짜리 아들에게 운전을 가르치는 엄마, 참 별나다. 트레버 노아의 엄마가 그랬다. 그녀는 자신의 무릎에 아이를 앉히고 본인이 페달과 기어를 조작하는 동안 아이에게 핸들과 계기를 움직이게 했고 곧 기어 레버를 다루는 법을 가르쳤다. 그것은 탐험이었다. 엄마는 트레버에게 자신이 갖지 못했던 모든 것을 주고 싶어 했다. 엄마는 '흑인들은 그럴 수 없다'거나 '흑인들은 그래서는 안 된다'라는 생각에 얽매이길 거부했다. 이러한 태도는 트레버에게 세상이 '내' 것이 될 수 있다고 믿게 했고 '내'가 내 자신을 변호해야 하며 '내' 의사와 결정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심어 줬다. 엄마 덕분에 트레버는 출신에 따른 제한을 극복했고 가능성의 최상층을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어디까지나 "태어난 게 범죄"인 사람이었다. 흑인들을 완전히 통제하기 위해 고안된 법률과 감시 시스템으로 구성된 일종의 경찰국가 제도였던 아파르트헤이트의 궁극적인 목적은 원주민들을 '분리'시키고 '노예화'한 후 '보존'한다는 명목으로 강제로 제거해 남아공을 백인 국가로 만드는 것이었다. 이 체제 하에서 저지를 수 있는 최악의 범죄 중 하나가 다른 인종과 성관계를 맺는 것이었고 그 범죄를 트레버의 부모가 저질렀다. 남아공에서는 검은 피가 섞인 혼혈인은 유색인으로 분류됐고 트레버는 부모의 범죄를 입증하는 증거였다. 엄마와 아빠는 트레버의 피부색 때문에 한정된 시간과 장소에서만 가족이었다.
그러나 불우한 환경에서도 삶에 대한 열정이 엄청났던 엄마는 트레버에게 과거로부터 배우고 과거보다 더 나아져야 한다고 말했다. 과거를 슬퍼하지는 말라고도 말했다. 엄마는 과거를 흘려보냈을 뿐 아니라 반복하지 않았다. 이것을 엄마는 트레버 노아에게도 가르쳤다. 빈민가가 세상의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도록 했다. 그 덕분인지 트레버 노아는 창의적이고 독립성이 강하고 에너지가 넘쳤으며 체계의 허점을 늘 잘 찾아냈고 엄마에게서 인생의 고통을 잊는 능력을 물려받았다.
불행한 것은 엄마가 폭력을 멈췄을 때, 아벨의 폭력이 시작됐다는 점이었다.
언제든 의지로도 되지 않는 일이 있었으니, 엄마의 연애와 결혼 생활이 그러했다. 트레버는 계부에게서 벗어나야 했고 엄마는 계부를 대신해 돈을 벌고 아이들을 돌봐야 했다. 계부가 휘두른 가정 폭력에 엄마는 당장 경찰에 신고하지만, 경찰은 이를 '단순한 가정 일'로 치부하였고 아벨은 처벌받지 않았으며 경찰의 외면은 끝내 아벨이 아이들 앞에서 엄마에게 총을 쏘는 데까지 이른다.
내 아가, 넌 좋은 면을 볼 줄 알아야 해.
끝내 희망을 놓지 않는 트레버의 엄마. 가톨릭 사립 학교와 아파르트헤이트의 무자비한 권위가 말도 안 되는 규칙들 위에 놓여 있었던 것처럼 남아공에서 남자의 권위는 여자의 권리를 짓밟고도 무사했고, 트레버가 자신이 돈을 벌기 위해 행한 많은 일이 사실은 나쁜 일이었음을 그때는 알지 못했듯 남자가 여자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것은 큰 문제도 되지 않았다. 마치 백인들이 흑인을 인종차별하고 아파르트헤이트가 그 범죄의 사실만 강조하며 감정적으로 혹은 도덕적으로 전혀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가난과 폭력이 일상이었던 시절을 살아온 트레버 노아의 옆에, 남들이 보기에 꼴통 같은 엄마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었나 싶다. 원칙을 세우며 지키려 노력하고 치열하게 살았던 엄마, 아들이 어리다고 봐주는 법 없이 잘못하면 매를 들어 징계하고 잘하면 보듬어주고 잘해야 하면 묵묵히 긍정의 힘을 불어넣어주던 엄마. 엄마의 꾸준한 신념 덕분에 트레버 노아가 지금에 이를 수 있었던 건 아닐까 싶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의 코미디언 트레버 노아의 자전적 에세이 "태어난 게 범죄"는 아파르트헤이트에 의한 남아공의 참상을 열심히 보여주지만 개인의 삶이 더 강하게 다가오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트레버 노아 역시 부당한 대우를 잊고 싶은 무의식이 발현했던 걸까. 아니, 그는 코미디언이라는 본분에 충실하려는 욕구가 발현되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슬퍼하려는 찰나 웃게 만들어버렸으니까.
한 아이가 성장하면서 자아를 찾아가는 동안 겪은 아파르트헤이트 남아공의 실상, 사랑과 용기로 엮인 '뛰어' 가족의 이야기. 웃픈 제목으로 시선을 끌었던 "태어난 게 범죄"이다.
리딩투데이 지원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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