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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의 거짓된 삶
엘레나 페란테 지음, 김지우 옮김 / 한길사 / 2020년 9월
평점 :
엘레나 페란테의 잔혹성장기 어른들의 거짓된 삶
거짓말, 거짓말. 어른들은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하면서 정작 자기들은 끊임없이 거짓말을 늘어놓는다.
내가 열두 살이 된 시점부터 집안의 분위기가 묘하게 달라진다. 한없이 다정하고 사랑스러운 말만 해주던 아빠는 어느 날 문득 나에게 아버지의 누이, 추악함과 사락함의 대명사였던 빅토리아 고모와 닮았다고 말한다. 고모는 빨간 신호등 같은 의미였고 나는 그 신호등에 다가가고 만다. 조반나였던 내가 잔니나가 되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고모는 정말 빨간 신호등이었을까?
나는 겉모습 뒤에 가려진 진짜 모습을 보아야 한다는, 겉모습 아래 숨겨진 내면을 보는 법을 배우라는 고모의 충고에 따라 부모님을 객관적 시각으로 바라보다가 어느 날, 아버지와 친형제처럼 지내는 마리아노 아저씨와 어머니의 다리가 뒤엉켜 있는 광경을 목격한다. 그리고 고모는 내게 주었던 팔찌가 마리아노 아저씨 부인의 팔에 있는 걸 본다.
인간은 집을 잃은 달팽이 같은 존재여서 밖에 너무 오래 머무를 수 없다.
그렇게 말한 아빠는 달팽이가 아닌지 집을 떠났고 다시 달팽이인 것처럼 새로운 집을 마련해 새로운 가족을 일군다. 어른들의 불만이 아이들에게까지 영향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에도 불구하고 내 부모는 이혼한 것이다. 아빠는 마리아노 부인, 아니 코스탄차 아줌마와 그 딸들과 함께 살기 시작한다. 하지만 엄마는 여전히 아빠에 대한 순애보를 간직하고 있다. 나는 방황하며 1년 여의 인생을 낭비한다.
몽상이 현실이 되면 모든 것이 망가질 것이다.
나는 부모가 보여준 어른들의 세계에 대한 반항 혹은 환멸로 스스로 정한 틀에 스스로를 가두고 나를 모욕하는 이들에게 나름 정당한 자기 방어를 한다. 그리고 잘못을 저지르는 쪽은 언제나 남자들이고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하는 아빠는 왜 한 번도 엄마나 나에 대해서 책임을 지지 않았느냐고, 아빠는 거짓말쟁이라고 속으로만 외친다. 이제 나는 아버지의 시선으로 바라보던 기준을 버리고 고모의 기준에 맞춰 고모의 눈으로 세상을 탐색하지만 이 역시 옳지 않은 시각이었음을 깨닫고 만다.
그 일은 우리 집의 길고 긴 위기의 종지부이자
어른들의 세계로 가기 위한 나의 힘겨운 여정에서 매우 중요한 순간이었다.
하나를 캐면 열 개 딸려나오는 형국의 뒤틀린 진실, 별 잘못이 없다고 믿었던 아버지는 식자충의 영양가 없고 허세 가득한 대화를 이끄는 속을 감춘 위선자였고, 모든 걸 투명하게 보여주는 것처럼 굴던 고모는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줄 뿐 정작 자신은 고통의 밭에서 한 발짝 벗어나 있었으며, 싸구려 연애소설을 수정하는 형편없는 교사였던 엄마는 사실은 일상이 주는 숙제의 무게를 이를 악물고 견뎌내는 여인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리저리 휘둘리다 결국 어른들의 세계에서나 있을 법한 배신과 집착과 걷잡을 수 없는 욕망에 사로잡히고 만다.
등장 인물들의 캐릭터가 정말 하나같이 다 겹치지 않는다. 특히 여성들은 어떤 형태로든 불안을 끌어안고 있다. 남들이 훌륭하다 인정하고 있음에도 그들은 스스로에 대해 만족해하지 않고 과거에서 헤어나지 못하며 비뚤어진 사고에 노출되어 있다. 하지만 각자는 삶을 풀어나가는 방식이 달랐을 뿐 결국 불완전한 존재로서의 탈피를 앞두고 있었던가 보다. 자신 앞에 놓인 현실을 똑바로 보는 여자들, 아이고 어른이고를 떠나 그들의 눈에 비친 "어른들의 거짓된 삶"은 정말 거짓된 것이었을까!
운명에 순응하지 않고 폭발적인 힘을 발휘하는 여성들을 통해 페미니즘 소설의 정수를 보여주는 엘레나 페란테, "어른들의 거짓된 삶"을 페미니즘 소설이라 할 수는 없지만, 길들여지지 않은 욕구를 보여주며 잔혹한 사춘기 시절과 여러 여성상을 보여주는 도발적인 성장소설이다.
전 세계 27개국에서 동시 출간되는 경이로운 이벤트를 벌인 엘레나 페란테의 "어른들의 거짓된 삶", 첫 시작부터 묘한 느낌을 받았는데 마지막 부분에서는 주인공에 대해 더더욱 묘한 궁금증을 일으키는, 여성의 잔혹성장기를 그린 가족소설이다.
네이버독서카페 리딩투데이 지원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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