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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즘
손원평 지음 / 은행나무 / 2020년 9월
평점 :
만남과 이별, 흩어지는 '마음'을 다양한 빛깔로 비추어가는 손원평의 프리즘
빵 하고 부풀어오르는 오븐 속의 빵처럼
예진: 너무 날카롭고 아름다운 건 결국 속성을 뒤바꿔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기는 걸까.
소규모 완구회사에서 일하는 스물일곱의 예진은 커피를 음미하는 아지트에서 만난 남자를 목하 짝사랑 중이다. 그를 생각하며 혼잣말을 하다 남에게 들킬 정도다. 이 마음, 혹시 도원에게도 들킬까?
도원: 과연 나는 좋은 사람일까.
영화의 음향을 손보는 사운드 후반 작업 업체에서 일하는 서른다섯의 도원은 되도록이면 밖에서, 직사광선이 내리쬐는 야외에서, 그리고 혼자서 커리를 즐긴다. 그가 찾아낸 공간인데 예진이 선점자라는 듯 군다. 같은 건물에서 일하는 여자였다. 그런데 그녀도 굳이 대각선으로 세 블록이나 떨어진 후미진 곳을 찾아냈다니, 이거 인연일까? 하지만 도원은 지금만큼의 간격을 유지한 '딱 좋은 거리'가 좋다.
호계: 알죠? 계산은 따로따로.
테이블이 세 개뿐인 가게에서 일하는 호계는 달콤하고 부드럽고 몽글몽글한 빵집의 냄새에 유혹당한다. 그러나 너무나 따뜻하고 포근하고 마냥 병아릿빛이라 가짜라고 여긴다, 이것이 호계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이다. 남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 이것이 호계가 맺는 인간관계 방식이다. 그는 의미 없는 거짓말을 많이 하는 편이다.
재인: 이상한 사람이지?
호계가 일하는 가게의 주인인 서른넷의 재인은 빵을 반죽하고 굽는다. 야무지고 귀여운 작은 새 같은 그녀는 언제나 부지런하고 깔끔하고 늘 일정한 톤의 화사함을 유지하며 상큼한 미소를 띠고 있다. 하지만 그 뒤에 숨겨진 비밀이 있음을 눈치 빠른 호계에게 이미 들켰다. 그녀에게는 어린 시절의 불우한 기억이 있고, 죽어가는 엄마가 있고, 혼인신고도 없이 결혼했다가 이혼한 전남편이 있다.
어쩌다 맘에 드는 단막극을 만나는 경우가 있다. 흔치 않은 경우라 '어쩌다'를 붙였다. 아, 손원평의 "프리즘"은 소설이구나. 그렇다면 '어쩌다' 마음에 꼭 드는 단막극으로 만들면 참 좋겠다.
별처럼 수많은 사람들 그중에 그대를 만나 꿈을 꾸듯 서롤 알아보고
주는 것만으로 벅찼던 내가 또 사랑을 받고 그 모든 건 기적이었음을
별처럼 수많은 사람들 그중에 서로를 만나 사랑하고 다시 멀어지고
억겁의 시간이 지나고 어쩌면 또다시 만나 우리 사랑 운명이었다면,
내가 너의 기적이었다면
이선희의 <그중에 그대를 만나>라는 노래와 뮤직비디오가 떠오른다. 얼마나 숱한 인연이 스치고 머물고 떠나가는가.
손원평의 "프리즘"에서도 네 남녀는 서로 스치고 머물고 떠난다. 늘 사랑에 가능성을 접지 않지만 자꾸 아프고 상처 입는 예진, 자신이 좋은 사람인지를 확신하지 못하기에 사랑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는 도원, 경계를 정해둔 채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마음을 닫고 세상에 무관심한 호계, 상처를 꼭꼭 감추고 스스로에게 뒤늦은 후회를 견뎌내는 형벌을 내리는 재인. 만남과 이별을 겪으며 여러 갈래로 흩어지는 그들의 마음은 햇살을 받은 프리즘이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그 갈래만큼이나 다양한 빛깔로 세상에 드러난다.
새로운 관계와 지속되는 인연, 엇갈린 타이밍과 빛을 잃는 사랑,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상처와 후회는 네 주인공이 가끔 드러내고 가끔 숨기고 때로는 꽁꽁 숨겨버리는 진실 속에서 안타까움을 부른다.
이쪽인가 싶어 따르다 보면 옛 인연이 오늘의 인연을 막아서고 저쪽인가 싶어 가다 보면 새 인연이 또 다른 관계를 만들어내는 엉킨 실타래 같은 이야기. 얼마 전 웃지 않는 독특한 캐릭터를 내세워 공감 불능 사회를 묘사해낸 "아몬드"로 첫 소설을 히트시킨 손원평 작가의 사랑에 관한 다양한 빛깔의 이야기 "프리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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