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겨울
아들린 디외도네 지음, 박경리 옮김 / arte(아르테)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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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 문학, 아들린 디외도네, 여름의 겨울

 

 

 


불친절한 어른의 세계로 첫발을 내딛는 한 소녀의 위태로운 성장기

 

 

 


이야기엔 원래 우리가 무서워하는 걸 몽땅 집어넣기 마련이야.
그래야 그런 일들이 진짜 삶에선 일어나지 않는다고 확신할 수 있거든.

 

 

 

 

 

 

아버지는 사냥을 즐긴다. 박제를 즐긴다. 그래서 집에는 늘 동물 시체가 있었다.
그게 곰팡이 냄새가 나는 다른 집들과 다른 점이었다.
또 다른 점이 있다면... 아마...
아버지의 폭력이 일상이었다는 것과 어머니는 늘 공포에 질려 아메바처럼 굴었다는 것,
그리고 나는 네 살 어린 남동생 질의 순수하고 마법 같은 웃음 소리를 들으며
내가 받은 모든 상처를 치유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어쩌면 크게 다른 점이었다.

 

 

그런데 끔찍한 사고가 벌어졌다.
아이스크림을 파는 할아버지가 나에게 줄 휘핑크림을 만들던 중 기계가 폭발했다.
할아버지의 얼굴을 파고든 기계, 반쯤 날아간 얼굴, 하나만 남은 눈...
그는 즉사했고, 그 사건 이후 질은 입을 다문 채 음식을 거부했다.
나는 질을 예전으로 돌리기 위해 노력하다가
급기야 동물의 시체가 있는 방으로 질과 함께 들어갔고
질은 그곳에서 공포를 쏟아내며 흐느꼈다.
마침내 하이에나 사체의 무언가가 질에게 옮겨오기라도 한 듯
질은 어느새 아버지와 똑같은 잔혹성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나는 질을 순수했던 시절로 되돌리기 위해 <백 투 더 퓨처 3>에 나오는 타임머신을 만들기로 했다.

 

 

 

아버지는 나무에서 자라는 버섯이 조금씩 집을 무너뜨리듯,
매 초마다 자신의 권위가 훼손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타임머신이라는 마법이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으며
이웃집 할머니는 요정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것을 알아버린 열두 살의 나.
가슴에 몽우리가 맺히는 나이로 자란 나는 동물 연쇄살해범이 되어버린
여덟 살 질의 엉망이 되어버린 미소를 여전히 되돌리기 위해 노력하고
그가 마을 고양이들의 잭 더 리퍼라는 비밀을 지켜주는데...
나는 언제까지 이 삶을 지속할 수 있을까!

 

 

 

 

 

 

 

 

식사시간이 커다란 잔에 담긴 오줌을 매일 마셔야만 하는 벌과 비슷했다는 말에
나는 끄응, 절로 소리를 냈고 속이 끓어올랐다.
폭력을 휘두를 건수를 잡기 위해 주변을 탐색하는 아버지는
자신이 사냥해 온 하이에나의 죽기 전 모습이었을 테다.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의 "보라색 히비스커스"에서도
상류층 가장으로서 가족 모두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가 등장한다.
"여름의 겨울"에서도 가족들을 숨막히게 하는 회계사 아버지가 등장한다.
집 밖에서는 세상 번듯한 상류층에 지식인 이들의 총알받이가 되는 가여운 집 안 식구들.
이처럼 가정 폭력이란 우리가 예상하지 못하는 곳에 버젓이 존재하며
그로써 상처 입은 가족 일원은 누군가를 지극히 보호하거나 또다른 상처 입힘으로써
세상에 대한 방어막을 치고 만다.

 

순식간에 성장한 소녀가 모든 폭력의 근원인 '가족'을 파괴할 결심을 하게 만드는 현실.
14개 문학상을 수상한, 불친절한 어른의 세계로 발을 내딛는 소녀의 위태로운 성장기,
아들린 디외도네의 "여름의 겨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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