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출근, 산책 : 어두움과 비 오늘의 젊은 작가 8
김엄지 지음 / 민음사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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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 오늘의 젊은 작가 08 주말, 출근, 산책: 어두움과 비, 김엄지

 

 

 

 

그는 보이는 곳만 밟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강박적으로 성실한 E는 모든 게 자신의 성격만큼이나 일상적이길 바란다.
하지만 누구이 일상적인 일상을 바란 걸까?
그의 일상은 자신의 성격과 혹은 자신의 바람과는 많이 달랐다. 
크리스마스 즈음 만나기 위해 연락한 여자는 핸드폰이 꺼진 채 연락되지 않고
새해 첫날 일출을 보러 산에 가지만 정상까지 가지 못한 채 떠오르는 해를 봐야 했고
하산하다 산 오천원짜리 라면을 만원에 먹어야 했으며
퇴근 후엔 동료들과 낚시를 즐기는 상사를 욕하며 술을 마시고
멈추지 않는 비에 진저리를 친다.
그리고 금이 간 앞니를 조심하느라 넘어지며 꼬리뼈를 다치고
소중히 보호하던 앞니마저 마침내... 부러지는 일상이 미래로 다가오는데...

 

 


제가 태어나려고 태어난 게 아니고요.
변명하지 마. 네가 태어난 곳은 어디지?

 

 


차분하게 보이던 E는 소설이 전개될수록 진짜 모습을 슬쩍슬쩍 드러낸다.
부하 직원들의 의견을 묵살한 채 주말을 빼앗는 권력을 누리는 상사,
끝내 연락이 되지 않는 여자,
게다가 함께 술을 마시며 함께 상사 욕을 하다가 갑자기 사라져버린 a,
여자를 폭력으로 다스리다가 대마초를 피워대는 연극무대를 펼치는 a의 사촌,
갑작스레 사라진 a를 대체하기 위해 등장한 d,
여전히 함께 술을 마시며 딴소리를 하는 회사 동료 b와 c,
하루치 숙박비를 환불해줄 테니 나가라는 섬의 숙소 주인,
그리고 스치듯 지나가는 사람들 속에서 드러나는 것이다.
왠지 폭력적이고 권태로우며 불합리한 세상사라며 자신은 아닌 척했지만
사실 그는 어쩌면 끊임없이 내리는 비 속에서 '주말, 출근, 산책'을 반복하며
넓고 새카만 우산 아래로 스스로의 폭력성을 위장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암전은 무대 위의 유일한 개연성이었다.

 

 


출퇴근 기계가 되어버린 채 미래는 없다는 듯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불안정한 일상을
"주말, 출근, 산책: 어두움과 비"로 못박아
단절과 고독 속에 피어나는 무력감을 부각시키는 소설이랄까.
은근슬쩍 집요하게 단어와 문장을 반복하며 현대인의 삶 속 숨은 고집스러움을 끄집어낸
민음사 오늘의 젊은 작가 08 김엄지의 소설 "주말, 출근, 산책: 어두움과 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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