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없는 세계
미우라 시온 지음, 서혜영 옮김 / 은행나무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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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없는 세계, 잔잔하고 따사로운 성장의 기록

 

 

 

 

 

결국 요리란 건 생과 사를 잇는 멋진 행위
_후지마루

DNA를 복제하고 있는 세포가 별처럼 빛나고 있는 거예요.
_모토무라

 

 

 

 

 


최고의 요리로 손님을 행복하게 해주는 일류 요리사를 꿈꾸는 후지마루,
'사랑' 없이도 왕성하게 번식하고 다양한 형태를 취하며 환경에 적응하는 식물에 매료되어
식물 연구에 모든 것을 바치겠다는 대학원생 모토무라.
주인공들만 놓고 보자면 두 사람은 반드시 사랑에 빠져야겠지.
하지만! 사는 게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건 만고의 진리?

 

 

 

난 아무래도 좋아.
언젠가 다시 연애를 시작할 거라는 걸
나 자신이 잘 알고 있으니까.
아픔이 누그러들 때까지 잠깐 동안 참으면 되는 거야

 

 

 

요리 외길에 기분파인 쓰부라야 밑에서 매일 채소를 썰며 수련을 하던 후지마루는
어느 날 배달하러 간 T대의 자연과학부에서 연구에 열정을 쏟는 모토무라의 모습에 반하고 만다.
그런데 모토무라는 어이쿠, 그저 식물에 빠져 있을 뿐,
그저 식물 연구에 일생을 바치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내뿜을 뿐,
그래서 후지마루 따위(!) 눈에 담지도 않을 뿐,
마쓰다 연구실에서 바쁘지만 유쾌한 나날을 보낼 뿐!

 

 

아름답다는 것과 쓸쓸하다는 건,
왜 이렇게 닮았을까.

 

 

 

그래도 사람이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썰어야 한다고
후지마루가 순순히 물러났다면 야채를 썰 자격, 아니 요리사가 될 자격도 없는 거 아니겠는가.
역시나 그는 타고난 친화력을 발휘하여 크고 작은 에피소드가 끊이지 않는 연구실의 일상에
자연스레 녹아들고 심지어 모토무라가 고민하는 문제에 대뜸 명쾌한 답을 내놓기까지 한다.
나팔 은행잎을 보며 요정이 부는 나팔 같다고 말하는 후지마루 때문에 감격하는 모토무라.
이러저러한 후지마루의 선한 마음씨에 감동받은 모토무라는
이제 인간과 식물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되짚어보기에 이르는데...
너무 쉽게 왔다, 이렇게 쉬울 리가 없지!

 

 

 

 

 

 

 

 

 

 

 


뭔가를 지나치게 사랑해서 겁쟁이가 되는 건,
많은 사람들이 경험하는 감정이다.
_가토


뭔가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마음이
그 사람이 걸어가는 길을 비춰주는 경우가 있구나.
_모토무라


취미든 일이든 사람이든,
사랑을 기울일 수 있는 대상이 있는 것이야말로
인간을 지탱하는 힘이 아닐까.
_모토무라


실수를 알아차렸을 때,
오히려 그것을 즐겨보자는 마음가짐으로 대응책을 짜면
참신한 연구로 이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_후지마루

 

 

 

 

 


이렇게 사랑이 넘치는데 왜 "사랑 없는 세계"라는 제목을 썼냐고?
저 위에서 살짝 흘렸듯이 식물들의 세계를 빗댄 말이다.
그리고 그 세계 속에서 후지마루와 모토무라는 사랑을 발견한다.
사랑이 가득 찬 세계, 희망의 빛을 먹고 사는 이들의 모습은
마치 현미경 속에서 빛을 내는 식물의 세포만큼이나 아름답고 빛이 난다.
그들의 연애가 순조롭게 이루어질지 어떨지
혹은 그들의 꿈이 성공할지 어떨지에 연연하지 않고 말이다.

 

요시모토 바나나 이래 가장 참신한 작가라는 평을 듣고 있는
미우라 시온의 신작 "사랑 없는 세계".
잔잔하고 따사로운 등장인물들의 성장의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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