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절기에 온 편지
김래임 지음 / 고즈넉이엔티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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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로운 오후의 낮잠 같은, 환절기에 온 편지






이제 좀 살 만하니 곧 죽을 날이네.
겁나는 건 그거였다.
인생의 시련과 절망을 열심히 걷어내고 걷어내다가 늙어버리는 것.



 

 


잘나가는 청년 CEO였다가 한순간 쫄딱 망해버린 스물일곱 살 봉수아.
이제 좀 발돋움 좀 해보나 싶었는데
오히려 시련을 겪으며 추락한 그녀의 나날은
좀 살 만한 듯하니 그새 늙어버렸더라는 할머니의 푸념과 다를 게 없음이다.
자기 몸 하나 건사하기도 녹록지 않은 순간
수아는 우연히 전직 국회의원에게서 외할머니의 육필 원고를 전달받는다.
수아가 태어나기도 전에 돌아가신 외할머니는
아직까지도 집안 모임에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공공의 적이었는데
삼선 국회의원 친구라니!
할머니는 대체 어떤 분이셨던 거지?
집안 사람들이 물고 뜯고 씹어대는 그분 맞나?




, 사는 게 죽을 만큼 힘들 땐.
누구도 위하려 들지 말고,
누구에게도 약해지지 마라.
너만 생각하고 너만을 위해 움직이렴.
그래야 그 힘든 순간으로부터
너를 지켜낼 수가 있단다.


 

 

 



왠지 슬플 것 같다며 할머니의 글을 읽지 않겠다는 엄마 대신
편지인 듯 일기인 듯 회고록인 듯한 "환절기에 온 편지"를 읽는 수아.
한번에 읽어버릴 만큼 매력적이지 않기에
폐업 신고를 하고 친구한테 신세를 지고 알바를 구하고
우연히 그리고 의도적으로 투자를 받아 다시 재기를 꿈꾸는 내내
할머니의 편지는 수아의 곁에 머문다.



중간의 길을 걷는 것은
마음이 내는 길이 아니라,
상황이 만든 길을 따라가는 일이었다.




나도 덩달아 수아의 인생 환절기에 온 할머니의 편지를 읽으면서
묘하게 어긋나는 부분을 잡아낸다.
그리고 끝내 그 어긋남이 할머니가 마지막까지 입을 열지 못했던
어쩌면 비밀이고 어쩌면 고백이었음을 깨닫는다.
할머니는 동생의 월사금과 촌지를 든 채 가출 후 4년째 되던 해
여섯 살짜리 딸아이의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온다.
노동의 고단함을 몸소 겪어낸 공순이로서의 삶에서
인간의 삶, 희망에 부푼 삶을 살고자 했던 할머니의 손에 깍지를 끼운 여섯 살짜리 딸아이.
뭔기 이상한 거 못 느꼈는가?



투자하지 않는 건 투자할 가치가 없어서라고.
투자 가치는 다시 생겨나는 게 아니라고.





누군가에겐 돌이킬 수 없을 만큼 강한 펀치일 실패가
스물일곱 수아에겐 인생의 환절기로 지나갈 수 있었던 건 할머니의 편지 덕분일까.
할머니가 덤덤한 듯 그러나 간절한 마음으로 적어내린 그 편지에서
된통 감기에 걸렸던 수아가 인생의 환절기를 견뎌낼
해열제와 진통제를 얻은 사연.
엄마의 마음이라는 말로 표현되지 않을 것을
할머니와 엄마와 수아가 깨닫는 그 순간이, 나에게도 내 딸아이에게도 닥치겠지!
믿고 보는 고즈넉이엔티의 소설, 김래임 작가의 "환절기에 온 편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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