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크 에프 그래픽 컬렉션
로리 할스 앤더슨 지음, 에밀리 캐럴 그림, 심연희 옮김 / F(에프)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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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노블 스피크, 내 이야기를 들어 주세요






싫다고 말해, 내 속에서 얼어붙은 침묵이 녹아내린다


11월 중순 넘어쯤, 합의 없이 성관계를 한 남자친구를 고발한 여자아이 사건이 있었다.
아이는 술에 취한 상태였고 항거불능,

정확히 말하자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도 모를 정도로 인사불성이었다.
처음엔 미안하다고 사과했던 남자친구는 여자아이의 고발 후 이내 태도를 바꾸어
사귀는 사이임을 강조, 합의하에 관계를 가진 거라고 말했고
학교의 정학 처분에 응하지 않은 채 다시 재판결을 해달라고 요구했다.
이 사건에서 고통받는 건 누구일까.
사귀던 여친에게 고발당한 남자아이일까,
사귀던 남친에게 성폭행당한 여자아이일까,
사귀던 남자가 그렇게 형편없는 놈이라는 걸 알아버린 여자일까.



가슴속에서 땡그랑 소리가 난다.
목도리가 내 목을 빙빙 둘러 꽉 조여 온다.
허어어어억
나는 소원을 빌고 싶지만,
무슨 소원을 빌어야 할지 모르겠다.




 

 


멜린다는 성폭행 피해자였다.
아무도 이 사건을 몰랐다.
멜린다 역시 처음으로 마신 맥주 세 잔에 취해 있었고
정신을 차리기 위해 밖으로 나간 게 화근이었달까.
바람둥이 앤디는 혼자 있는 그녀를 찾아냈고 그녀를 강간했다.
다행히 멜린다는 정신을 차린 후 파티가 한창인 집에서 이를 경찰에 신고했지만
그 때문에, 파티를 망쳤다는 이유로 고등학교에 입학한 첫날부터 왕따가 되었다.
그녀가 왜 경찰에 신고했는지를 모르는 친구들은 그녀를 안아주지 않았다.
멜린다가 입을 닫아버린 때문이다.
그날의 진실을 스스로 외면하는 것, 이로써 실어증에 걸린 그녀는
일상과 학교생활이 엉망이 되어가도 입을 열 줄 모른다.




난 개구리의 배를 갈라야 한다.
개구리는 한마디 말도 없다.
벌써 죽었으니까.
내 안에서부터 비명이 나오기 시작한다...




멜린다는 입술을 하도 깨물어대 껍질이 벗겨지고 목구멍은 늘 따끔거린다.
부모님도 선생님들도 입을 열지 않는 멜린다를 향해 찔끔 관심을 보이지만
멜린다는 모든 게 시큰둥하다. 자신의 비밀이 너무 커서였다.
단지 파티를 망쳤고 파티에서 행해지던 모든 즐거움을 단절시켰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공공의 적이 되어버린 멜린다.
그녀는 절벽 끝에 몰린 채 자신의 피해를 주장하지 못한다.
학교에서의 그녀에게 그나마 도피처라면 미술 시간의 나무 그리기,
아무도 쓰지 않는 직원 휴게실 정도다.
그런데 그녀는 언제까지 진실을 감추고 입을 다물까?



 

 

 


표지의 멜린다는 자신의 상처를 나무에 그대로 옮겨놓은 듯 스크래치로 표현되어 있다.
미투운동 덕분에 성 폭력에 대한 경각심은 높아졌고 사회적 대응도 조금 달라졌을 테다.
하지만 정말 피해자에 대한 인식도 너그러워졌을까.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당당하게 말하라!"고 격려하지만
과연 그들이 마음 편하게 스스로 입을 열기란 얼마나 어려울까, 싶다.



난 싫다고 말했어.



1999, 성폭력이라는 민감한 이슈를 다룬 로리 할스 앤더슨의 영 어덜트 소설 "스피크".
아이스너상 수상작가 에밀리 캐럴의 그래픽노블로 재탄생한 고전으로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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