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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볼루션 맨 - 시대를 초월한 원시인들의 진화 투쟁기
로이 루이스 지음, 호조 그림, 이승준 옮김 / 코쿤아우트 / 2019년 12월
평점 :
에볼루션 맨: 시대를 초월한 원시인들의 진화 투쟁기

나는 왜 아버지를 잡아먹었나-'아버지 죽이기'와 '아버지 먹기'에 대한 기록
처음엔 가볍게 읽고자 했던 책이다.
그런데 이건 가벼울 수가 없다.
원제 때문에 웃기는 이야기일 거라고 지레짐작했던 나는
책을 읽는 내내 묵직했던 기분은 책을 덮는 순간에는 숙연해졌다.
에볼루션 맨, 진화하는 인간들.
그들이 아버지를 잡아먹는 과정(물론 정말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는 건 아니다)은
이상주의자 현실주의자, 박애주의자와 이기주의자의 대립으로 펼쳐진다.
원시인들의 진화 이면에 숱하게 뿌려진 밑밥들은 정말 찰스 다윈을 깨울 듯한 기세다.
화산이 부모불이라면 불이 붙은 나무들은 자식불인 셈이야.
하지만 불이 붙은 나무도 다른 나무에 닿아 불을 옮길 수 있다면
얼마든지 부모불이 될 수 있겠지.

아버지 에드워드는 우리 주변에도 있는 이상주의자.
그가 화산 근처까지 가서 불을 '잘라온' 덕분에
그의 부족은 힘센 동물들로부터 스스로를 지킬 힘을 가지게 되었다.
에드워드는 이것을 진화를 위한 역사적 장치로 보고
더 큰 발걸음을 떼기 위해 끊임없이 궁리한다.
아들들 역시 하나같이 재능 있다.
사냥을 최상위 개념으로 여기는 오스왈드,
작은 일을 깊이 있게 생각하는 철학자의 면모를 보이는 어니스트,
예술적 재능이 뛰어나 어디서든 그림을 그리는 알렉산더,
아버지를 닮아 과학자적 성향을 갖춘 윌버,
개, 사슴, 돼지 등을 길들여보려는 윌리엄까지.
여자들의 재주는 딱히 언급되지 않는데
굳이 하나 내세우자면 어머니의 뛰어난 요리솜씨랄까.
인간은 과거로 퇴행할 수도 있고,
미래로 나아갈 수도 있지.
하지만 제자리에 가만히 있을 수는 없어.

급기야 에드워드는 남매 간 혼사를 금지하고 족외혼을 성사시키려 든다.
이미 어려서부터 남매끼리 짝을 짓기로 암묵적 합의가 있었던 아들들이 이 계획에 반대하자
에드워드는 머치슨 폭포나 빅토리아 폭포에 가본 적 있냐고 묻는다.
여태 그들의 울타리에서 따로 벗어나 생활해보지 않았음을 뻔히 알면서도
자신의 의견을 관철하기 위해 이런 물음을 던져 자극하는 것이다.
이 작전 역시 잘 먹혀들어 그들은 족외혼에 성공하지만
에드워드의 글로벌한 사고방식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결국 아들 윌버와 함께 알아낸 불을 직접 피우는 방식을
타 부족들에게 무상으로 전파하고자 시도함으로써 다른 아들들의 반발을 사는데...
아버지가 꿈속 사냥터로 가신다면
더 행복하게 지내실 거야.
돌을 다듬어 무기를 만들고 그 성능을 개선해가는 것,
네 발로 걷지 않고 두 발로 걷기 위해 허리를 펴고 직립보행을 시도하는 것,
유전적 결함을 방지하기 위해 친족혼을 금하고 족외혼을 추진하는 것 등등
인류 진화를 위한 갖가지 장치를 이상주의자 에드워드는 실현해낸다.
하지만 진화의 원동력을 제대로 갖추기 위한 아버지의 구석기 유토피아는
불의 사용법 전수라는 시도에서 강력한 반대에 부딪힌다.
불을 다룰 줄 아는 자, 세상을 지배할지어니!
진화와 탐욕의 대립에서 그들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애니메이션 영화로도 제작됰 완전히 이상하고, 강렬하고, 똑똑한 컬트소설.
아이들에게도 읽히라고 권하고픈 인류진화다큐멘터리
"에볼루션 맨: 시대를 초월한 원시인들의 진화 투쟁기"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