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아래 사람 없는 세상을
과학의 삶에서 찾으려 하고 과학으로 돌려주려 했던 장영실은
궁에서 쫓겨난 후 휴대용 천평일구를 지니고 정말 이탈리아 밀라노로 갔을까?
거기서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만나 그의 작품 <최후의 만친> 속 1인이 되었을까?
순교란 조용하며 무거운 길이다.
정조 15년, 윤지충과 권상연이 신주를 불사르고 천주교식으로 제례를 지냈다는 이유로 처형당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순교자였던 두 선비의 적발 과정에서
그림 한 점이 입수되었으니,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모사본이었다.
예수와 열두 제자의 마지막 밤 벌어지는 식사 모습이 담긴 그림에서
김홍도는 사라진 장영실과 소실점 속 인왕산을 발견하고
유교와 서학의 충돌의 현장에서 정조는 조선의 앞날을 걱정하며 그림의 수수께끼를 풀고자 한다.
이 와중에 정약용은 형제들을 향한 조정의 탄압과
자신을 겨냥한 노론의 사찰이 두려워 신앙의 흔들림을 느낀다.
공서파를 앞세운 조정은 본격적으로 서학인 탄압을 시작하고
이 박해로 가족을 잃은 여섯 서학인이자 탈춤패 초라니는 똘똘 뭉쳐 복수를 꿈꾼다.
정여립의 후예를 자처하는 전직 세자익위사 박해무,
새벽 기도 나갔다가 체포되어 고문 당해 한쪽 눈이 뽑힌 채 탈옥한 전직 상의원 어침장 김순,
천주인을 발본색원하라는 밀명을 받고 잠입한 곳에서 오히려 천주쟁이가 되어버린 이하임,
서학을 섬기다 기찰에 걸려 장 맞아 죽은 어미에 대한 복수를 꿈꾸는 도몽,
의녀가 되어 가난한 이들에게 의술을 펼치겠다는 누이를 잃은 전 창덕궁 내의원 어의 김혁수
붓과 십자가가 하나가 되길 바랐던 전직 학자 배손학.
여기에 도몽의 누이이자 불을 다루는 도향까지.
복수의 마음을 접어라.
자신을 옥죄고 스스로를 죽이는 일이 될 것이야.
어찌나 느리게 전개되는지, 나 또한 느리게 느리게 읽느라 시간이 많이 걸렸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에 프리메이슨, 카메라 옵스큐라, 밀라노, 가나안 땅 등의
왠지 생소한 느낌의 용어가 등장하니 작가의 시도가 돋보인다.
정약용이 카메라 옵스큐라를 통해 들여다본 조선판 <최후의 만찬>.
임금을 중심으로 좌우측으로 앉은 여섯 신하와 여섯 외인 엇갈린 모습이 완성되기까지
더없이 신중하고 느리게 진행되는 혼불문학상 수상작 "최후의 만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