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색 히비스커스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황가한 옮김 / 민음사 / 2019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보라색 히비스커스, 아프리카 문학의 매력에 흠뻑


 



고장을 위해 일하는 자 '오멜로라',
그 영예로운 호칭을 가진 이가 나 캄빌리의 아버지였다.
독실한 가톨릭교도였음에도 아버지 유진은 가족을 지배하기 위해
그 지배를 유지하기 위해 스스로 신격화를 시도했고,
그것은 제대로 먹혀들었다.
어머니도, 오빠도, 나도 그가 세운 규율에 꽁꽁 묶여 있었고
실수라도 하면 아주 뜨거운 맛을 봐야 했으며
의도치 않은 일에도 책임을 져야 했다.



내가 너한테 하는 일은 전부 너를 위한 거야.



아버지는 가난한 부모 아래서 태어나 무지막지한 고생 끝에 자수성가했다.
또한 가톨릭교로 귀의해 자신의 부친조차 이교도라 하여 백안시하고
가족과의 접촉을 막을 만큼 고집쟁이였다.
그러나 자신의 차 한 모금을 나눠줌으로써
이 모든 게 애정의 한 자락임을 내세우는 아버지.
어머니는 유산이 된 이유를 아무에게도 밝히지 않았고
오빠와 나는 그 이유를 묻지 않았으며
아버지 역시 침묵하며 끔찍한 상황이 절대 벌어지지 않도록 가족을 단속했다.


 

 

 


엄마가 자식한테 어떤 식으로 말하고,
무엇을 기대하는가를 통해 그 애들이 뛰어넘어야 할 목표를 점점 더 높였다.
아이들이 반드시 막대를 넘으리라 믿으면서 항상 그랬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됐다.
오빠와 내 경우는 달랐다.
우리는 스스로 막대를 넘을 수 있다고 믿어서 넘은 게 아니라
넘지 못할까 봐 두려워서 넘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가정폭력, 그것에 처음 균열을 일으킨 것은
억압에 시달리던 오빠 자자였다.
오빠는 주일에 영성체 받기를 거부함으로써 아버지의 명령을 깨뜨리고자 하였다.
주님의 몸을 받지 않는 건 죽음이라는 아버지의 말에
자자는 "그럼 죽겠습니다, 아버지"라고 대답한다.
이 사건 이후로 나의 일상은 뒤죽박죽되었고
내가 처한 현실을 제대로 보게 되었지만 나는 여전히 갈등했다.
아버지는 대외적으로 가난한 이들을 위한 봉사와 헌신
그리고 언론 자유를 위해 투쟁하는 투사였기 때문이다.

나의 갈등은 다른 도시에 사는 고모네 가족을 만나면서
드디어 껍질을 깨기 시작한다.
모든 게 부족한 가난한 지역에서 어렵게 생활하면서도
자유롭고 지적이며 자주적인 사촌들과 고모.
그들의 삶에서 나는 드디어 새로운 삶에 대한 희망을 찾기 시작하는데...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 중에는 이유를 찾을 수 없는 일,
그냥 이유가 존재하지 않거나 필요치 않은 일이 있기 때문이다.






나이지리아 상류층 가정을 배경으로 세대 간 갈등,
사회제도적 갈등을 그려낸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내가 접한 첫 번째 작품이고 그녀의 첫 번째 작품인데
우리나라에서 소개된 순서로는 네 번째라고 한다.
유진이 아이들과 아내를 향해 내리치는 벨트 끝이 어찌나 선명하게 느껴졌는지
내가 순간 입술을 앙다물었고, 도망치라며 그들의 등을 떠밀고 싶었다.

여성서사로 이루어진 소설이지만
"보라색 히비스커스"를 굳이 페미니즘으로 한정해서는 안 된다.
아마 작가가 워낙 세계적 페미니스트로 유명하기에 저절로 그리되는 걸까?
가부장제의 압력 속에 끝없이 침묵해야만 하는 엄마와 딸,
더불어 아버지를 극복해내려는 아들까지
그들의 사적인 공간에서 행해지는 폭력과 정신적 착취가
서서히 깨어나는 시선으로 그려진 소설 "보라색 히비스커스"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