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갖다 버리고 싶어도 내 인생
하수연 지음 / 턴어라운드 / 2019년 6월
평점 :
재생불량성빈혈? 갖다 버리고 싶어도 내 인생

그래도 내 인생이잖아. 살아야지, 버텨야지, 일어나야지.

열여덟, 그 어린 나이에 그녀는 쓰러졌다.
그냥 몸이 안 좋은 걸로만 생각했다.
남들 다 몸살 나고 감기 걸리듯 자신도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니?
재생불량성빈혈이라니!
피부기 투명할 정도로 하얗던 게 몸에 피가 없어서였다니!
그녀의 병원 생활이 그렇게 시작되었다.
힘들면 힘들다고 티 좀 내고 싶은데
병실에 있는 사람 모두 백혈병이라 그러지도 못했다.

왜 힘든 건 무뎌지질 않는지
왜 겪어도 겪어도 처음처럼 힘든지
누가 좀 알려줬으면 좋겠다.
자신 때문에 힘들어하는 가족들을 떠올리며 그녀는 또 한 번 좌절한다.
가족들이 이렇게 힘들어하는데 정작 자신은 힘들어할 힘도 없다는 게 서럽다.
그녀는 자꾸 미래보단 죽음을 떠올리고
내일 아침 눈뜨지 않기를 바라는 심정이 강해진다.
면역치료를 받은 지 4개월째,
수혈받는 날이 잦아지니 이제 남은 건 골수이식밖에 없다.
공여자를 찾기 위한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치열하게 몰두하다가 갑자기 해탈도 한다.
아, 뭐 어떻게든 되겠지!


밤마다 불투명한 미래를 두려워하며 눈물 짓다가도,
긴 한숨 끝에 스스로를 토닥이다가도,
새벽에 억지로 눈을 붙이고 아침이 올 때까지 뒤척이다가도,
문득 1년 후의 자신이 일기장을 들여다보며 웃고 있는 모습을 떠올린다.
피를 말리고 기대를 말리고 희망을 말리는 나날을 보내며
돌탑 쌓듯 마음을 다잡다가도 작은 돌 하나가 허물어져버리는 순간들.
그녀의 투병은 그렇게 애끓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내가 아빠보다 먼저 죽으면
아빤 날 평생 그리워만 할 거라고 했다.
이제부터는 네 몫이니 잘 견뎌내달라 말하는 아빠에게
나는 알겠다는 말밖에 하지 못했다.

14세, 중학교 입학 후 6개월 만에 자퇴를 하고
1년 동안 고입, 대입 검정고시를 치르고 15세에 대학생이 된 하수연.
이렇게 남들보다 좀 일찍 삶의 바퀴를 돌린.게
나중에는 참 신의 한 수처럼 느껴진다.
투병, 이식 후 회복기까지 거치고도 복학을 하니 21세.
하지만 졸업 후 몇 년을 번아웃과 수면제 부작용으로
의욕을 상실한 채 무기력하게 보내야 했다

그래도 참 성격 밝은 그녀라 다행이다 싶다.
혈소판은 동결된 등록금마냥 한 달째 같은 수치를 유지하는데
적혈구만 혼자 뚝뚝 떨어지는 상황에서 그녀가 비꼰다.
'적혈구씨는 그렇게 눈치가 없어서 사회생활하기 힘들겠어요.'
그뿐인가.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혜택에 감사할 줄도 안다.
골수검사하느라 자발적 골다공증을 만들어대던 것 같은 경험 때문에
뼈를 한 번에 뚫어서 빨리 끝내주겠다는 말에 오히려 든든함을 느낀다.
삭발을 안 해도 된다니 엄청나잖아!
내 치아는 퍼펙트해서 손볼 곳이 없다고 했다. 이런 건치 미인 같으니.
오, 그런 걸 미리 알 수 있다니 좋은 세상이군.
분명 다시 건강해질 거야.
이 나이에 기저귀를 차고 이렇게 깊은 안식을 느낄 줄이야.
와 씨, 내가 억울해서라도 살고 만다, 진짜.
두려움을 이기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마음을 먹고 문제를 똑바로 쳐다본 후
그 일을 다시 해보는 것이다.
기로에 선 사람들에게 그녀는 자신이 겪었던 감정을 토대로 입을 연다.
"다 잘 될 거예요.
당신이 어떤 결정을 하든지 나는 당신을 응원해요."
재생불량성 빈혈의 덫에 걸려 긴 투병생활을 해왔던 그녀가
골수이식 후 재발 없이 5년을 넘겨 완치를 입에 올린다.
투병기라지만 어쩜 이렇게 희망적인지...
그녀가 직접 그린 그림들도 죄다 희망을 뿜어내는 느낌이다.
얼굴 모르는 공여자에게 감사하는 것마저 희망적이다.
지금 몸 아픈 분들, 끙끙 참지 말고 병원에 가시라.
그녀도 미련스레 굴다가 큰일날 뻔한 거니까.
어느 날 갑자기 쓰러져 병마와 맞서야 했던 하수연 작가의 투병 에세이
"갖다 버리고 싶어도 내 인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