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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헤미아 우주인
야로슬라프 칼파르시 지음, 남명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10월
평점 :
절판
보헤미아 우주인, 영웅의 삶 남편의 삶
인생을 꾸리는 데 정말 소중한 것은 무엇일까?
예전에는 관측된 적 없는 혜성 하나가 우리 은하로 진입하면서
은하계 사이에 우주 먼지 모래 폭풍이 일었고 태양계를 휩쓸었다.
금성과 지구 사이에 구름 '초프라'가 형성되었고
이것의 입자를 채취해 그 화학적 성질과 생명의 징후를 탐색하려고 했지만
무인 왕복선은 그 임무를 완수하지 못했다.
이후 독일에서 침팬지 그레고어를 태워 보낸 원격조종 왕복선이 돌아오자
초프라는 스스로 소멸되면서 구름 중심부로 바깥층이 흡수되는 현상을 보였다.
그리고 나 체코의 예약 영웅 야쿠프 프로하스카가
고국에 과학적 영광을 안겨주기 위해 얀후스1호에 올라타
초프라를 향한 탐사에 나섰다.
체코공화국의 카렐대학교 천체물리학과의 종신 교슈이자 우주 먼지 연구자였던 나는
혹시 돌아오지 못할 가능성이 있는 임무를 맡겠냐는 제안을 냉큼 받아들였다.
그게 우주인 부부의 비극적 생이별임을 알았더라면 내 선택은 달라졌을까?
나는 지구에서 넉 달 정도의 거리만큼 떨어진 우주 어느 구석에서,
한 시간이 지날 때마다 아내로부터 3만 킬로미터씩 멀어지고 있는 참에
내가 지구로 돌아갈 이유였던 그녀가 날 떠나기로 했음을 전해듣고 말았다.
야망에 대해서 서로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지.
자기 손으로 직접 집을 짓고 단순하게 살아가는 거야.
그런 사람들은 내가 야망을 보는 방식이 암이었음을,
그래서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야망이 날 죽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네.
야쿠프는 그의 조국 체코가 공산주의국가가 되는 데 일조했던 아버지 때문에
가족 전체가 '빨갱이'로 몰려 어린 시절부터 이웃들의 눈총과 따돌림을 겪으며 자란다.
이것은 그에게 절대 지워지지 않는 상처가 되었고
그가 우주에서 몇 개월을 홀로 버텨야 하는 위험하고 고독한 비행을 수락한 이유가 된다.
자신과 가족들을 손가락질했던 사람들에게 복수하는 것.
이것이 자신의 인생에 얼마나 큰 소망이었는지를 자각하기도 전에
그는 아내의 헌신적인 사랑과 내조마저 우선순위에서 내려오게 만든다.
그러나 우주에서 장시간 혼자 지내며 고독에 노출된 야쿠프는
지구에서 보냈던 평범한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고
자신의 삶이 아내 덕분에 얼마나 행복했는지를 곱씹게 된다.
우리에게는 생존이 가능한 태아를 임신하는 것 이상의 능력이 있다.
우리는 연인이다.
우리는 우주의 가장 큰 모순이다.
우리는 모든 것에 맞선다.
우리는 진화의 유산이 아니라 삶의 기쁨을 얻기 위해 산다.
오늘, 적어도 오늘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
이런 모든 상념에도 불구하고 우주먼지 초프라는 야쿠프가 탄 우주선을 침범한다.
지구에서 넉 달 떨어진 우주 한복판!
야쿠프는 세 시간 남짓 버틸 수 있는 산소밖에 없는 상황에서 장렬히 우주선을 떠나고
그에게 씻지 못할 상처를 주웠던 조국에서는
그의 영웅적 면모에 대해, 그의 장렬한 죽음에 대해 모든 언론이 애도를 표하는데
그는 여전히 '나'라는 시점으로 이 글을 이끌어나간다.
어떻게 된 일이지?
중년 남자가 인생을 돌아보고 자아 성찰의 시간을 가지는 소설?
전 세계의 관심을 받는 국가 영웅의 숨겨진 그늘을 그린 책?
모든 것을 달관한 듯 굴면서 가끔 성공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는 주인공의 내면 고백?
우주를 떠도는 동안 비로소 깨달은 일상의 소중함, 아내를 향한 사랑을 담은 SF 소설
≪보헤미아 우주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