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심장
진주현 지음 / 더시드컴퍼니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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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심장, 페르소나를 위한 마음 찾기 여정

 

 

 

 


가면인지 분신인지 모를 이들의 이야기

 

 

 

 

 

호기심 강하고 숫자 조합 강박이 있는 대학생 J.
어렵다 못해 가학적인 수준의 강의로 악명 높은 예술미학 교수 N.
그녀는 N의 수업 내용을 따라가기 위해 그의 강의를 녹음하고
매순간 테이프를 재생하며 그의 목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N의  목소리가 전하는 울림에 갇혀 허우적대다 결국 그와 사랑에 빠진다.

 


우리는 서로에게 천사이자 악마였고
서로의 몸을 연주하는 오르간이었다.

 

 


그들은 제법 잘 맞는 듯했지만 누구에게나 감추고픈 아킬레스건이 있다.
건드리지 말아야 할 것을 건드리고 빗금 그은 선을 넘는 순간
84일간의 짧은 사랑은 단숨에 막을 내린다.
J는 사랑하는 이의 가장 아픈 상처를 찌르는 말을 내뱉는 만행을 저지르고는
'이별이야말로 우리가 지옥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것'이라는 에밀리 디킨스의 말을 온몸으로 겪어낸다.

 

 

 

어느덧 서른한 살에 이른 J는 잡지 출판사에서 마감에 허덕이며 살아가고 있다.
그래도 제법 잘 살아가고 있었다, N의 엄마가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오기 전까지는.
그의 엄마는 그녀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다는 듯 J의 직장 근방을 약속장소로 정한다.
그리고 마땅히 J가 죄책감에 시달려야 한다는 듯 그녀에게 폭탄을 떨어뜨린다.


"그애는 오 년 전에 세상을 떠났어요."


N의 엄마는 그의 자살 이유를 자신을 배신하기 위한 반항이고, J 때문이라고 몰아부친다.
이후 J는 죄의식에 시달리다 회사를 그만둘 정도로 지독한 난독증을 일으키고
끝내 겨울 같은 삶을 살아가기에 이른다.

겨우 난독증이 나은 J는 다시 사회로 뛰어들기 위한 준비를 갖추려는 참에
말도 안 될 만큼 높은 보수가 주어지는 희한한 일을 떠맡게 된다.
하지만 '타인의 슬픔을 청소하는 일'을 몇 건 진행한 J는
이 모든 게 자신을 괴롭히려는 N의 엄마가 꾸민 일임을 알게 되고
결국 N이 그 존재를 부정하던 그의 아버지를 찾아가기에 이르는데...

 

 

 

 

 

 

 


소설 속 인물들은 저마다 강박증이라는 악마에게 사로잡혀 있다.
상처, 상실, 죄의식 등에 빠지는 순간 어김없이 강박증이 찾아온다.
N은 어린 시절의 거짓말을 씻어내려는 듯 끊임없이 손을 씻어대다가 병원에까지 가야 했고,
N의 어머니는 아들을 인간답게 키우겠다고 데리고 나온 후 문단속에 집착한다.
J는 보이는 숫자마다 더하고 빼고 곱하고 나누고 혹은 해체하고 조합하는 강박증에 시달린다.
그리고 주변의 많은 이가 크고 작은 중독이나 상실을 겪고 미쳐본 인간들의 표본처럼 나타난다.

 

 

 

기괴한 협정에는 원래 말이 필요 없다.
그리고 굳이 내가 등장하지 않아도
악마는 자기 자신 속에도 있다는 것이
가장 헐렁해도 은밀한 세상의 진실이다.
누구든 악마가 될 수 있고, 그 사도가 될 수 있다.

 

 

 

페르소나, 마치 가면인 듯 혹은 분신인 듯 소설 속 어디서든
제삼자 같은 목소리가 불쑥 끼어든다.
정신 차리고 읽지 않으면

 어느새 페르소나의 향연에 잠식당해버릴 듯한 《겨울의 심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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