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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 제인
개브리얼 제빈 지음, 엄일녀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9월
평점 :
비바, 제인 - 생은 인간 스스로 자꾸 거듭 태어나게 만든다

여자들에게만 새겨지는 신기한 주홍글씨!

정치 지망생인 20세의 아비바 그로스먼은 정치와 스페인어를 전공했다.
그녀는 자신의 경력을 위해 하원의원 에런 레빈의 캠프 사무실에서 인턴으로 일하게 된다.
하지만 어느새 그녀는 불행한 결혼생활을 하소연하는 하원의원과 불륜관계를 맺었고
아비바의 엄마 레이철은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아내 입방아에 오르내리기 전에
성인이 되어버린 딸아이가 제자리로 돌아오길 바란다.
하지만 운 나쁘고 우연한 사고로 불륜이 공개된 후 아비바의 인생은
기막힌 검색 시스템 때문에 절대 재기할 수 없을 정도로 무너져버린다.
교장으로 재직 중이던 레이철 역시 사건의 후폭풍에 휘말려
오랫동안 정열을 바쳐온 자리에서 물러나기에 이른다.
그리고 에런 레빈은 여전히 하원의원으로 승승장구한다.
그는 정략결혼 상대자였다는 아내와 헤어지지 않았고
그 아내 역시 세상 그 어떤 여자보다 자신이 제일 사랑하는 남편과
헤어질 생각이 없다.
15년이 지나도록 에런 레빈은 하원의원이다.
15년이 지나도록 아비바는 행실이 불안정한, 유부남을 꾀어낸 수치스런 여자였다.

인생을 포기한 듯 집구석에 틀어박혀 있던 아비바는 공교롭게도 임신 사실을 알게 된다.
이제 아비바는 구글에서 자신의 삶이 검색되지 않도록
개명을 하고 자신이 살던 곳을 떠나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일을 개척한다.
제인 영, 그녀의 새로운 이름이었고 루비라는 딸과 함께였다.
이렇게 평온하게만 삶이 흘러가면 참 좋았겠지만
제인은 웨딩플래너를 맡았던 한 커플의 남자에게 정체를 들키고 만다.
하지만 그녀는 제인 영, 아무 소리 못하고 세상에게 비난받던 철부지 스무 살짜리 가 아니었다.
정치적 야망을 가지고 있던 남자는 앨리슨 스프링스의 시장이 되고자 하고
상대 후보로 나선 제인 영에게 과거를 들먹이며 협박하지만
제인 역시 그의 아내의 비밀을 알고 있다.
물론 제인에게는 그 아내의 비밀을 써먹을 생각은 없지만
남자의 입을 다물게 할 수는 있었다.
그런데 그 와중에 루비는 결국 엄마의 비밀을 알게 되고
루비는 엄마를 폭로하는 단서를 신문사에 제보한 후
자신의 아버지일지도 모르는 하원의원을 찾아가는데...

여전히 사회에는 이중잣대가 준비되어 있다.
사회 구성원은 기꺼이 이중잣대를 들이대고 2차 가해를 서슴지 않으며
잊힐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다.
모두 여자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미소지니, 슬럿셰이밍이 전 세계적인 공통적 현상이라는 방증이겠다.
미투, 탈코 등을 통한 충격적인 폭로가 이어지지만
성폭행 가해자, 주로 남자에 대한 법원의 관대하고 어이없는 판견 등은 여전하다.
이런 현실의 그늘을 다루면서도 소설의 분위기가 너무 밝고 담담해서 일순 놀랍다.
그렇다. 한때의 실수에 인간의 존재가 부정당하거나 비난하는 것은 옳지 않음을 역설하는 것이다.
혹시 한때의 실수라도 용납할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잣대를 유독 여자에게만 들이대서는 안 된다고,
낙인을 찍을 거면 공평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아비바, 아니 제인의 엄마는 자신의 딸이 과거를 딛고 나름의 삶을 꾸리는 것을 차분하게 응원한다.
한때 딸아이를 막아서려고 급급했던 레이철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여자, 딸 아이가 대중의 날 선 혀 끝에 매달려 있음에 분개한다.
이것이 지금 우리의 현실이다. 사실은 나의 현실이기도 하다.
그렇게 교육받았다는 핑계는 이제 그만,
우리는 새로운 교육을 통해 사회를 바로잡을 수 있다.
잘못된 관습은 냉큼 버려버리자.
좌절의 상황에서 그녀들이 재탄생할 수 있도록!
개브리얼 제빈의 ≪섬에 있는 서점≫이 궁금해진다.
여자들의 공분을 살 만한 내용을 이렇게 재밌게 풀어내다니,
그녀의 또 다른 소설에는 어떤 재미가 숨어 있을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