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폴의 하루, 낯설고도 익숙한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폴의 하루
임재희 지음 / 작가정신 / 2018년 9월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폴의 하루, 낯설고도 익숙한

경계인이자 주변인으로서의 실존적 고독감?

어디에든 속할 수 있는 그들 아닐까!

여기도 저기도 온통 이민자들이다.
이국적이고 낯선 삶의 풍경을 섬세하게 그려내는 데
이민자만큼 적절한 주인공들이 또 있을까?
한국에서 미국으로 간 이민자, 한국으로 돌아온 귀환자
혹은 한국에서 살고 있는 한국인 등의 인간형이 모두 등장한다.
그들은 '경계인', '주변인'을 포함해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운명에 처한 사람들까지의 시선으로
삶을 바라보고 표현하고 탄식한다.
그들의 시선을 따라가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쩜 그들은 낯설고도 익숙한 공간이 붙박이들보다 많은 것 아닌가?
어쩌면 그들은 여기에도 저기에도 자연스레 속하는 것 아닐까?

미국에 살거나 머물거나 혹은 돌아오거나 한 사람들은
한곳에 정주하지 못한다뿐 남들이 해보기 어려운 경험을 가진다.
그들이 이곳에도 저곳에도 적응하기 위해 얼마나 공을 들이고 애를 써야 했는지는
결국 그들에게 나름의 보상으로 다가오지 않았는가 싶다.
끊임없이 한국적인 것을 찾으려 하고 한국인 혹은 한국적인 것들과
교감을 나누려 하는 그들은 달리 말하면
누군가에게 동경의 삶일 수 있으니까.
그래서 작품 뒷면의 작품 해설이 내게 썩 와닿지 않았음이다.

한국적인 것을 찾아 다시 돌아온 사람마저
미국에서의 삶을, 미국적인 사고를, 미국적 행동을 떨치지 못한 채
한국에서의 생활에 위화감을 느낀다.
결국 왜 한국에 다시 돌아왔는지, 그 이유가 모호해지는 것이다.
그들은 뿌리를 찾아왔다고, 느끼지만 그들은 한국에 계속 살았어도
찾고자 하는 것이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자신의 근원 같은 것, 인생을 살아가면서 누구나 던지는
'나는 무엇인가, 혹은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존재적 가치를 찾고자 한 것일 게다.
그저 그들이 한국이 아닌 곳에 있었기에
스스로 뿌리내리지 못하고 흔들린다고 느꼈을 뿐.
어디에 있었든 그들은 끊임없이 불안해하고 스스로 바람을 찾아
제 몸을 흔들흔들, 내맡겼을 것 같다.

"삶이 다 똑같지."
"뭐가 똑같아? 다 똑같다니? 그런 말 좀 하지 마.
다 똑같으면, 왜 우리가 싸우고 울고 일하고 먹고 섹스해?
그냥 앉은 채로 죽지. 살아봐야 뻔한데."

한국에서 한국인으로 사는 것에 대한 애환을 다룬 <동국>에 그 답이 있다.
그야말로 비극적인 삶 한복판에 놓인 동국 가족들과
그 비극의 씨앗이 혹시 자신들에게 달라붙을지 몰라
핏줄을 외면하는 사람들.
그들의 민낯에 '동국'과 그 가족은 주변 핏줄들로부터 스스로 멀어지는 삶을 택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상황과 역할에 의해 변하는 가변적 정체성이 아니라
어디에 속해 있든 상관없이 흔들리지 않을 실존적 나의 정체성인 것이다.

그런 게 사랑일까?
왜 나는 이제야 그 중요한 것을,
이렇게 시간이 많이 흐르고 나서야 알게 되는 걸까?
진한 게 다 빠져나가고 나서야 겨우 보이는 게 있어.
그때는 안 보이던 것들 말이야.

떠나는 자, 돌아온 자, 머무는 자 모두 삶의 주인공이다.
이들은 어쩔 수 없이 떠났더라도, 적응하지 못해 혹은 뿌리를 찾아 돌아왔더라도,
자기 삶의 터전에 나름 자리를 잡은 채 살고 있더라도
끊임없이 불안하고 소속감과 동질감을 느끼지 못한다.
세상으로부터 소외를 느끼는 이들은 어디에 있든 여전히 그럴 것이다.
그저 인생이 하도 부평초 같으니 우리는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음이다.
나는 어디에 속한 누구인지, 어디로 향해 가고 있는지 하는 근원적 질문 말이다.
그 질문에 속시원한 답을 얻지 못하는 한
우리는 누구든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삶을 살 것이며
또 어디에든 속할 수 있는 삶을 살아갈 것이다.

어디 사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결국 어디에서 죽느냐의 문제더라고.

실존적 고독감에 대한 질문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짤은 단편으로 녹여낸 것은 작가의 한 수!

긴 글이었다면 아마 질문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늪 속으로 가라앉는 느낌이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지 세상을 떠도는 유목민'이라는

임재희 작가의 생각에 동의하면서

단편집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폴의 하루》를 덮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