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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말의 희망 ㅣ 패트릭 멜로즈 소설 5부작
에드워드 세인트 오빈 지음, 공진호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7월
평점 :
일말의 희망, 과거를 고백한다는 것에 대하여

잔인한 기억을 뒤로하고 발을 뗄 수 있다는 일말의 희망으로!

패트릭의 아버지 데이비드가 죽은 지도 8년이 흘렀다.
그새 패트릭은 청년기를 고스란히 광기와 증오에 휩싸인 채
마약에 빠져 지냈으니 '성숙'과는 분명 거리가 먼 삶이었다.
그는 여러 치료소를 전전하며 마약을 끊었지만
문란한 성생활과 파티는 계속되었다.
그리고 패트릭은 자신이 마약을 끊기 위해 몸부림친 것이
사실은 아버지처럼 되지 않으려는 몸부림이었음을 깨닫는다.
난 살아갈수록 점점 더
세상일은 그냥 일어나거나,
그냥 일어나지 않는다고 확신해.
그 어느 쪽도 사람이 독촉해서 되는 건 별로 없어.

패트릭은 어린 시절의 자신이 겪은 일을 친구 조니에게 고백한다.
난 늘 진실이 나를 자유롭게 해 줄 것이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진실은 그냥 사람을 미치게 할 뿐이야.
진실을 말하는 게 사람을 자유롭게 해 줄지도 모른다는 조니의 위로도 있었지만
패트릭은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비밀스럽고 수치스럽기도 한 진실을
남에게 말한다는 것이 이렇게 쉽다는 사실에 어리둥절했다.
그저 고백의 카타르시스가 없음이 아쉬울 뿐.

어린 패트릭에게 괜찮지 않은 일이 벌어졌던 하루를 다룬 ≪괜찮아≫와
아버지의 죽음을 전해 들은 패트릭의 하루가 담긴 ≪나쁜 소식≫을 지나
패트릭은 ≪일말의 희망≫에서 과거를 떠나보내고픈 심정으로 고백을 선택한다.
여전히 악몽 같은 어린 시절의 기억에 시달리던 그였기에
용기를 내어 친구에게 과거를 털어놓음으로써
상처를 외면하고 도피하기만 했던 과거와의 결별을 결심한 것이다.
이로써 그는 진정한 자기 모색의 길로 들어서 마침내 구원을 향한 '일말의 희망'을 갖기에 이른다.

그의 주변은 여전히 위선에 가득 찬 상류층 사람들이 포진해 있고
귀족이 주를 이루는 상류 사회의 파티는 계속된다.
그러나 정말 다행스럽게도 패트릭은 의식적이었든 혹은 무의식적이었든
그동안 외면해왔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조심스레 꺼낸다.
남편에게 주눅 들어 웃음을 잃었던 어머니가
그를 떠나 그녀 자신의 삶을 모색함과 동시에 어린 패트릭을 외면했던 데 대한 응징처럼
그녀는 패트릭의 삶에 자리할 겨를이 없었는데, 이제 그는 어머니를 떠올린다.
그저 우연히 자기를 낳아준 것밖에 없는 사람이라고,
마치 이웃집 사람처럼 지리적 우연으로 연결된 관계였다고 상상하던
사춘기적 허세를 버리기로 한 것이다.
패트릭은 경건하게 달을 쳐다본다.
그 달이 그를 어디로 이끌지, 이제 패트릭 멜로즈 5부작의 3부가 막을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