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 1 : 태조 - 혁명의 대업을 이루다 조선왕조실록 1
이덕일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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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1 태조, 혁명의 대업을 이루다
 

 


무장 이성계, 조선 개국을 이루었으나
끝내 중원 황제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고려 공민왕 시절, 22세의 이성계는 부친 이자춘과 개경을 방문한다.
이성계의 고조부 때부터 원나라 벼슬아치였기에 이자춘은 공민완으로부터 환대받는다.
공민왕은 이자춘에게 쌍성으로 돌아가 백성을 돌볼 것을 명했고
이성계는 일종의 인질이 되어 국제상업도시 개경에 남는다.
말에 올라 들판을 달리던 게 일상이었던 청년 이성계에게
개경에서의 나날은 무료하기만 했고,
실력을 겨루는 것이 아닌
장비 갖추기 자랑 대회 같은 격구가 성행하는 개경의 행태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격구에 천재적 소질을 선보인 이성계가
고려 왕조를 무너뜨리리가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한편, 공민왕의 명을 받들어 동북면 사람들을 설득해 고려 쪽으로 돌려놓은 이자춘은
금의환양했지만 급작스럽게 죽고 만다.
독실한 불교신자였던 27세의 이성계가 장지 때문에 고민하던 차에
나옹과 무학이라는 두 승려에게 부친의 장지를 추전해달라고 애걸한다.
나옹이 골라준 임금의 자리와 재상의 자리 중 이성계는 임금의 자리를 고르고
훗날 무학은 이성계가 조선을 개창하고 나서 왕사의 자리에 오른다.

 

 

 




 




정도전은 '모든 백성에게 토지를 나누어주는 정치'로서 지극함을 이루고자 했으나

고려의 구가세족들의 반대로 과전법은 무산되고

이로 인한 토지 제도의 몰락은 고려 패망의 핵심적 이유가 된다.


한편 고려 왕조의 존망이 경각에 달린 비상 시기,

공양왕을 모시던 정몽주는 낙상해 거동하지 못하는 이성계의 사저를 방문하고

이방원은 집 안으로 들어온 호랑이에게 <하여가>를 던진다.

그러나 <단심가>로써 고려 왕실을 붙들고자 한 정몽주는

끝내 선죽교에서 방원 일파의 습격을 받아 목숨을 잃고 만다.

이로써 고려 왕실 비호 세력은 와해당하고

공양왕은 이성계와 동맹을 맺기에 이르나 폐위당하고 만다.


이후 문무백관이 이성계를 임금으로 받들고자 결의하여 이성계의 집으로 줄지어 가니,

이성계는 저택 문을 굳게 닫고 백관들을 들이지 않는다.

왕위에 올라달라고 조르는 백관들과 한사코 사양하는 이성계의 쇼 타임이 끝난 후

드디어 이성계는 왕위에 오르고 고려 왕조의 연장이라는 의미로 국호를 고려라 한다.

이성계의 나이 58세였다.

그는 개국 후 2년이 지나 고려 왕실이 복원되리라는 세간의 희망이 누그러지자

드디어 단군, 가자, 위만에서 사용한 조선을 국호로 삼는다.

이로써 진정한 조선의 시대가 열렸다.


 







이덕일의 ≪조선왕조실록≫은 오랜 구상과 방대한 역사 연구를 통해

태조 이성계로부터 25대 철조에 이르기까지 472년간의 역사적 사실을 담아냈다.

실로 우리나라의 위대한 기록 유산인 셈이다.

그중 첫 번째 태조 편에서는 위화도 회군을 통해 쿠데타를 일으켜

정도전 등과 더불어 고려를 멸망시키는 혁명의 대업을 이룬

조선의 첫 번째 왕 이성계의 젊은 시절부터

왕자의 난 이후 권력을 잃은 그가 끝내 중원의 황제라는 꿈을 이루지 못한 채

눈을 감는 순간까지를 담고 있다.

모든 권력이 궁극적으로 칼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몸으로 체득한 이성계는

훗날 똑같은 사실을 깨달은 아들 방원에 의해 고초를 겪는다.

권력을 위해 부모 형제까지 죽이는 잔혹한 피의 역사,

한정된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명분과 실리를 내세워 펼치는 정쟁 등이

적나라하게 펼쳐지는 드라마 같은 역사서,

≪조선왕조실록 1 태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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