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어타운 베어타운 3부작 1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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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어타운, 그들의 시간은 그날 이전과 그날 이후로 나뉜다
 

 

 


가슴에 곰을 품은 사람들, 옳고 그름은 잘 모를 수 있지만 선과 악은 제대로 구분할 줄 안다!



 




한때 잘나가던 시절이 있었다.
과거의 영광은 하키에서 비롯되었고, 몰락 역시 하키에서 비롯되었다.
이제 해마다 점점 일자리가 사라지고 계절마다 숲이 빈집을 집어삼키는 곳,
온 마을이 아이스하키에 미친 듯 매달리는 베어타운을 되살릴 단 한 번의 기회가
전국대회 준결승에 진출한 청소년 아이스하키팀에 달려 있었다.
그날이었다.

토요일이고 모든 일이 오늘 벌어질 예정이다.
온갖 좋은 일들과 나쁜 일들이.


마을 사람들의 묵직한 꿈을 어깨에 짊어진 청소년들은
끝내 승리를 거두어 결승에 나갈 기회, 우승할 기회를 획득한다.
'관례'대로 아이스하키팀은 파티를 즐기며 승리의 뿌듯함을 만끽한다.
그리고 베어타운 사람들을 한데로 모으기도 하고 흩어지게도 하며
대의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사실에 눈감게도 하고
그들의 마음 깊은 곳에 도사린 출세욕과 또다른 욕망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버린
'그 사건'이 발생한다.
공동체는 순식간에 하나로 엮이는가 하면 조심스레 갈기갈기 찢긴다.
그들이 보여주는 이기심은 모두가 공동으로 가진 평범한 것이었고,
쇠락한 마을이 살아날 기회를 날리기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기에 입을 다문다.
권력과 재력 있는 자의 편에 선다.
그 안에서 피해자는 마을을 집어삼키려는 음모를 꾸민 이가 되고
가해자는 피해자에 발목 잡힌 불쌍한 존재가 되어버린다.
이 모든 게 베어타운의 현실이었다.




 




더이상 잃을 것이 없는 공동체에서
아이스하키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무조건적 신념으로 뭉친 베어타운 주민들은
'Not In My Backyard', 즉 님비현상의 대표주자들처럼 아우성을 친다.
그들에게는 몰락한 마을을 재건하고 싶다는 희망이 무엇보다 최우선이었고
마을의 희망을 짊어진 소년이 한 여자아이의 '거짓말'에 의해 망가지는 걸 원치 않았다.
성차별적 언행이 자연스럽게 쏟아지는 보수적인 마을 안에서
마을의 희망을 굳게 지켜주고자 권력과 재력을 과시하는 비뚤어진 부성애가 등장한다.
그는 아들의 무죄 입증을 위해 유일한 목격자 아맛에게
엄마의 좀 더 나은 일자리 제공과 최고급 아이스하키 용품이라는 미끼로 회유한다.
아이스하키 말고는 아무 희망도 가지지 못할 것 같은 마을에
아맛은 폭풍을 몰고온다.



 




'이기기만 하면 무슨 짓을 해도 영웅'이라는 비정상적 논리 속에서
윤리와 정의가 뒷전으로 몰리는 베어타운의 모습이 내내 가슴을 짓누른다.
공부만 잘하면 무슨 짓을 저지르든 모두 용서받는다는 사회적 흐름과
기가 막히게 맞아떨어지는 이야기 아닌가.
 
≪오베라는 남자≫로 데뷔해서 일약 성공해버린 프레드릭 배크만.
≪베어타운≫은 그의 이야기 전개방식이 너무 잔잔하고 침착해서
오히려 독자인 내가 가슴을 졸이게 되는 소설이다.
마야와 그 가족과 친구가 더이상 상처받지 않기를 바라고,
그들이 삶을 포기하지 않기를 바라고,
그들을 제대로 된 눈으로 바라봐주길 바라는 마음이 계속되었다.
게다가 난 열여덟 살짜리 딸을 키우고 있다.
 
미투가 한창일 때 지하철 안에서 어르신들이 큰소리로 하던 말씀이 떠오른다.
"여자가 잘못한 거지."
더 따질 것도 없다는 듯 단언하고 미투 운동 자체에 대해 회의적이었던 그분들이
사실, 현재 우리나라 사회의 평균적 기준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그분들에게도 묻고 싶다.
"따님이 당사자였어도 그렇게 말씀하실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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