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시인이 가장 많은 나라가 한국이라고 한다. 그 무시무시한 등단제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만큼 우리의 서정적 정서는 풍부(?)하다고 볼 수 있다. 인터넷보급율 또한 최고이다 보니, 온라인으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이도 넘쳐난다. 여기도 한명 있다.
글을 쓰는 이유는 무엇인가? 글쓴이가 자신의 내면을 내보이고 누군가를 설득하고 스스로를 채록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일 것이다. 스스로가 판단할 일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무엇을 써야 할 것인가?
‘당신이 진정한 작가라면, 자신이 경험한 것만을 갖고 글을 써야 할 것이오!“(류시화, 지구별여행자)
글을 쓰는 사람들은 생활 속에서, 책속에서, 타인과의 대화 속에서 글감을 발굴하고 이를 자신의 언어로 표현한다. 타인의 글을 읽다보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글이 있는가하면, 도통 무슨 말씀을 하는 것인지 모를 때가 있다. 너무 현학적이거나 미학적 기준에 충실한 분들의 글도 그렇다. 우리가 모르는 낯선 철학자의 이름과 그들의 난해한 개념들로 채워진 글도 역시 그렇다. 글을 쓰는 이들이 모두를 이해하거나 경험할 수 없지만, 적어도 자신의 체험이거나 체험적 지식일 필요는 있는 것이다.
“당신의 영혼 깊이 새겨진 진실한 경험이 아니라면, 그 것은 글로 쓸 가치도 없소. 머릿속에 한순간 스쳐지나가고 마는, 그래서 금방 잊어버릴 수 있는 것들은 갖고 글을 쓴다면, 그 것이 어찌 다름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있겠소?”(류시화, 지구별여행자)
오늘날 특이하면서 생각이 좋은 작가(개인적인 생각에)인 류시화는, 마흔 다섯 시간이나 걸리는 인도 카르나타카 특급열차 안에서 만난 어느 노인과의 대화에서 진정한 작가수업의 의미를 깨달았다고 한다. 그 깨달음은 류시화의 글과 말을 통해 타인들에게 간접적으로 체험을 제공하고 있다. 나도 류시화의 독자로서 그 부분에서 강하게 무릎을 쳤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의미를 깨달았다고나 할까! 아직까지는 그렇다.
내가 쓰는 글의 최초의 독자는 바로 나다. 내가 쓴 글을 읽고 감동을 받지 못하거나, 공감하지 못한다면 타인들의 시선에는 어떻게 비춰질 것인가? 글을 내보이는 이들이 가장 두려운 부분이다. 전업 작가가 아닐지라도 글쓴이의 의도가 자신의 언어로 나타나 공감을 얻지 못한다면 그리 반가운 일은 아니다.
내가 쓰고자 하는 글은 내 영혼의 기록들이다. 사람과 사물과 책과의 만남, 그리고 자신과의 대화를 통해 끊임없이 기억된 체험의 기록들이다. 한참 시간이 흘러가도 내 영혼의 기록은 잊히지 않을 것이고, 적어도 진실 되게 내 자신을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체험적 기록만이 사실성과 독창성을 체득할 수 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개인적인 생각에 그렇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