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현궁의 봄 : 김동인 장편소설 한국문학을 권하다 20
김동인 지음, 구병모 추천 / 애플북스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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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우리나라 최초의 문예지 [창조]를 발간한 '김동인', [감자], [배따라기], [발가락이 닮았네] 등의 단편소설로만 접했던 그의 장편소설 [운현궁의 봄]..

6학년 국사시간에 담임샘이 언급하셨던 이 책을 이제서야 읽는다. 햇살 좋은 날~, 봄이었는지, 가을이었는지는 희미하지만, 칠판을 등지고 역사의 맥락을 짚어서 줄줄이 이야기해 나가시던 그 샘께서, 문득 이 책을 언급하셨다. 그냥 그런 책이 있노라고.. 국사시간과 문학 시간이면 엉뚱한 상상의 나래를 펴던, 그 꼬마 아이는 또 그런 것에 꽂혀서 아쉬워했지만 그냥 지나가는 언급일뿐이었다. 그 후로도 이 책은 국어시간이 아닌 국사시간에 한 번씩 등장하였다.

미술 공부를 했던 '김동인'은 마약중독으로 피난을 떠나지 못한 채, 6.25전쟁 중 사망하였다.

이미 '김훈'작가의 역사소설에 눈뜬지라, 일부러 찾지 않던 역사소설이란 장르의 재미 짐을, 이제사 발견하고 이 소설 역시 어릴 때 보았던 사극과, 배웠던 국사 지식을 총동원하여 전후의 맥락을 연결 지으며 흥미진진하게 읽게 된다. 극심한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한 소설 쓰기와 병마에 시달렸던 작가가 병석에 누워 죽어가느라, 중단되었다는 또 다른 역사소설 [을지문덕]에 대한 아쉬움도 생겨났다.

운현궁의 때이른 봄날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죽음으로 이야기가 시작되면서,

- 이날이 조선 근대의 괴걸이요, 유사 이래 어떤 제왕이든 감히 잡아보지 못하였던 '절대'적 권리를 손에 잡고 이팔도 삼백여 주를 호령하며, 밖으로는 불란서, 미국, 청국 들을 내려 주르고, 안으로는 자기의 백성의 복지를 위하여 그의 일생을 바친 흥선 대원군 이하응이 별세한 날이다. 조선 오백 년 역사에 있어서 조선을 사랑할 줄 알고, 왕가와 서민, 정치가와 백성, 윗사람과 아랫사람의 지위를 참으로 이해한 단 한 사람인 우리의 위인 이하응이 그 일생을 마친 날이다. 21

귀한 몸이 되기 이전의, 상갓집 개처럼, 술 먹을 일이 있으면 주책없이 찾아다니며, 냉대를 당하기 일쑤이어도, 아랑곳하지 않는, 비록 왕족의 신분이지만, 가난하고 세력이 없어, 끼니 걱정을 하여야 하는 불쌍한 종친의 비루한 이야기로 넘어간다.

그리고 그의 둘째 아들 '재황'이 임금이 되고 자신의 섭정이 허락되자, 그가 살던 사택이 '운현궁'이란 칭호를 얻고,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그의 집에 사람들이 북적거린다. 문안 차, 청탁 차,,,

쓸쓸했던 그 '운현궁의 봄'이 시작되는 때, 유달리 화려한 봄이라는 그해로, 소설이 끝나지만, 이미 우리가 아는 역사상의 수많은 스토리들이 막, 머릿속에서 펼쳐진다는 것..

과거와 미래를 넘나들면서 여러 에피소드들이 등장하고, 누군가 구수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처럼, 극적인 묘사가 읽는 내내 흥미를 붙잡아둔다.

명종 때의 사소한 시비로 서인과 동인이 나뉘고 동인이 다시 남인과 북인으로, 서인이 다시 노론과 소론으로 나뉘면서 늘 당파싸움에 휘말리던 조정,

정조이래, 순조와 헌종 철종은 어리고 병약하여, 군권을 펼 여력조차 없게 되니, 외척들 김 씨 일가들이 세도를 형성하였고 그런 당쟁의 틈에 낀 왕족들은 가련한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저 세 임금의 왕비들이 모두 김 씨 일가의 딸 들이었다.

역모의 죄로 엮여져 내몰리는 왕족들을 보면서, '흥선'은 일찌감치 자신을 포장해 버린다.

헌종이 죽었을 당시 제법 괜찮은 종친이 있었음에도, 대왕대비 김 씨는 자신들이 주무르기에 만만한 무지랭이 강화도령을 철종으로 세우고,

유력했던 종친 '이하전'은 역모죄를 씌워 사약을 받게 한다.

무뢰한들과 어울려 다니며 술 잘 먹고 투전 잘하고 싸움 잘하는 '흥선'은 김 씨 녀들 틈바구니에서 청상으로 늙어가다 대왕대비가 된 조대비와 비밀의 계획을 세우게 되는데..

훗날 대립하게 되는 며느리 민비를 중전으로 염두에 두게 되는 배경 이야기도 흥미롭다. 맥락상, 중간중간 등장하는 친숙한 여러 왕들과 인물들의 이야기 역시 재미나다. 이 책의 문학적인 의의는 소소할지라도, 1900년대 초반을 살았던, 작가가 수집했을 역사적인 사실들이 신빙성 있고 특히나 이 소설의 집필 배경이 생활고였음을 강조하던데,, '구병모' 작가의 추천글도 들어있다.

과거- 현재-미래로의 연결고리들이 흥미롭게 반복되고, 아둔한 임금과, 못된 세도정치 속에서 비루한 왕족들 보다 더 처참하게 살았던 백성들 이야기들이, 전면으로 등장하지는 않지만, 작가나, 흥선의 시선이 살짝씩 머물게 되는 부분에서 괜히 울컥한다. 지금의 민초들은 그래도 배워서 다행이다. 반항할 줄 알아서 다행이고..그래서 더이상 민초에 비유해서는 안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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