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을 찾아서 - 성석제 장편소설 문학동네 한국문학 전집 10
성석제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20년 나의 블로그는 '세상 부지런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내 블로그의 유입 검색어 No1은 '성석제'의 [첫사랑]이었다. [첫사랑],, 총 8편의 단편이 실려있는 이 책은, 나로 하여금, '성석제'의 유머와 해학, 풍자와 페이소스에 감탄하고 감복하고 무릎을 꿇게 했다.

연이어 읽은 그의 엽편 소설, [그곳에는 어처구니들이 산다] 또한 그러했다.

그리고 간만에 그의 장편을 읽었다.

1996년에 발표한 이 소설은, 바로 그 [첫사랑] 속, 조폭들 이야기, 어처구니없고, 단순하고 무식한,, 하지만 어마어마했던 조폭 이야기의 확장판이다.

그 이야기들 중 1995년에 발표한 [내 인생의 마지막 4.5초],, '마사오'와' 청바지'와 '청카바'이야기,,

사나이라면 천 길 낭떠러지에서 소나무에 대롱대롱 매달렸을 때 그 손을 놔버리는 거야." p214

그래서 더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었다. 물론 그 사실을 알게 된 건 책의 중반부 이상쯤 되어서 였지만 ..

나,, '장원두'에게 '마사오'는 지상에서 가장 강한 사내였고 마음속에 간직한 시생대였다. 가장 오랜 영토를 지배하는 영원한 ,, 가난, 불의, 불평등에 시달리던 모든 사람에게 희망을 주는 존재, 아이들에겐 우상이요, 어른들에겐 왕이었던 인물이었다.

그 '마사오'가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온 한동네서 한날한시에 태어난 오랜 동무 '박재천', 그의 전화를 받고 '장원두'는 시외버스를 타고 지역으로 내려간다.

- 가긴 가야지. 가긴 가야지. 내가 무심코 한 말이 자꾸 내 뒤통수를 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지, 보내긴 보내야지. 마음속에서 오래전에 죽었든, 지금 죽었든 갈 사람은 가고 보낼 사람은 보내야지.

일단 간다고 생각하자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가슴이 뛰는 박자는 4분의 4 박자 행진곡풍이었다가 4분의 3박자 춤곡으로 변했다가 박자고 뭐고 사람을 데리고 노는 듯이 제멋대로 변했다. 그러므로 가지 않고서는 내 가슴 때문에 내가 죽을 것만 같았다. 12

이 소설은 죽은 '마사오'의 장례에 참가하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가면서, '장원두'의 어린 날 신화를 남긴 존재와 자신의 지난날에 대해 회상하고, 그때의 사람들을 만나고 온갖 풍문과 숨겨진 이야기들을 넘나드는,, 일종의 로드 소설쯤 된다.

일제 시대 일본 순사의 끄나풀쯤 되었던' 마사오'의 아버지는 아들의 이름을 일본식으로 당당하게 지었지만, 해방이 되자, 마을 사람들에게 흠씬 얻어맞고, 외지로 떠돌며 가족들을 돌보지 않는다.

그리하여 '마사오'의 가족은 이웃들과 왕래 없이 가난하게 살았고, '마사오'는 전쟁 후 고아 같이 거리에서 자라난다. 그는 타고난 체격과 체력과 정신으로 희대의 건달, 쌈꾼, 깡패의 기질을 보였다.

그에게는 '미쓰꼬', 우리나라 이름으로는 '광자'라고 불리던 아주 못생기고 몸집 좋은 누나가 있었다. 그녀가 열일곱에 이웃 홀아비의 아이를 갖게 되자 '마사오'가 낫을 휘둘러 그 홀아비의 한쪽 눈을 실명시켰다. 소년 교도소로 갔던 그는 5-6년 후 무성한 일화와 신화와 함께 지역으로 돌아온다.

군에 입대한 '마사오'는 국군체육부대에 배속되어, 미들급 동양 챔피언의 스파링 파트너로 열 일 하지만, 맨날 KO 패 당하다, 비겁하게 이겨보고는 탈영을 한다. 총 여섯 번

'마사오'가 제대하기 전부터 그에 관해 떠돌던 신화를 듣고 자란 나, '장원두'는 그의 광신도가 되고 광신자가 된다. 그리고 광자 누나와 친하게 지낸다.

- 마사오의 그런 모습은 그 후 갖가지 신화를 낳기에 충분했다. 사실은 효모가 들어간 밀가루처럼 부풀어 올랐다가 적당히 첨삭이 되고 장식이 된 다음 잘 구워진 빵과 같은 신화로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 신화가 사람들의 머리와 가슴에 지워질 수 없이 되풀이되고 공고하게 되었을 때에 마사오는 완전히 돌아왔다. 지역 전체의 신화와 기억이 그를 위해 미리 마련해둔 왕좌에 올라가 앉는 것은 당연해 보였다. 34-35

- 인물은 저 혼자 인물로 나서 인물로 살다가 인물로 죽는가? 아니다. 처음부터 인물로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 인물은 우리 각자가 만드는 것이다. 내가 그 인물을 존경하면 그 인물은 존경받을 만한 인물이 된다. 내가 그를 사랑하면 그는 사랑받을만한 매력을 지닌 인물이 된다. 내가 그를 그리워하면 그는 정말로 그리운 인물이 돼준다. 동시에, 내가 그를 싫어하면 그는 금방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 누구에게나 싫은 인물이 되고 내가 그를 증오하면 그는 누구에게나 증오를 받는 인물이 된다. 37-38

그의 과자 심부름을 했던 어린아이가 자라나 외지에 나가 살다가

자신을 기억하는지도 모르는 그의 사망 소식에 나고 자란 지역을 찾아 나서지만

막상 그 장례식은 적적하기 그지없다. 정승집 개의 죽음과 정승의 죽음 이야기처럼..

- 낮술에 취한 사람의 얼굴처럼 붉은 해가 기울어가고 있다. 선산에 걸린 해는 중천에 떠 있을 때 보다 훨씬 커 보이고 위엄이 있다. 해의 크기가 아침에 다르고 한낮에 다르고 저녁에 다른 것은 아니다. 해가 아침이나 저녁때 가깝고 한낮에 멀어지는 것도 아니다. 뜰 때, 또 질 때의 해는 우리가 아는 산과 나무와 구름에 비교되어 상대적으로 커 보이는 것뿐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위대한 자는 하찮고 일상적인 것이 가까이 있을수록 더욱 위대해 보인다. 살아 있는 동안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우러러보게 하는 힘을 가진 사람이 마사오였다. 그는 지역 전체를 통틀어 비교할 만한 사람이 많지 않은 위대한 인물이었다. 그가 위대한 만큼, 그의 몰락도 장엄해야 했다. 죽음은 특별해야 했다. 그게 그렇지 않다면 세상 이치는 엉터리고 내가 믿는 신념과 가치와 신화는 쓰레기에 불과하다. 100

그리고 퇴색한 늙은 건달들과

'재천'과 나와 어울려 가출을 했던 또 싹수가 노랗던, 소싯적 건달 싹들을 만나고

첫사랑, 대통령이 되고 싶었던 절세미인 '나 세희'와

부자가 되어 지역에 호텔을 지으러 찾아온다던 가출 멤버 중의 '조 대경'.

'마사오'의 죽음 이후 왕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박재천'과

그와 경쟁 구도에 있던 다른 동지들과의 암투, 경쟁, 함정, 죽음의 이야기들이 등장한다.

이미 '마사오'를 배신했었고

인정사정없는 '조창용'의 조직 밑에서 이인자 노릇을 하던 '박재천'은

'조창용'이 죽자, 왕이 되어보려고 하는데,, 조직을 등에 업었다는 '조 대경'의 귀환에 지레 겁을 먹고 건달들을 쓸어모으며 '장원두'더러 증인을 서라 한다.

신화 속 '마사오'는 구체적인 조직도 없었다. 그는 정식으로 조직을 만들지 않은 혼자 힘으로 떠오른 해였다. 그의 영향력은 경찰, 의원, 지역 유지들에게도 미친, 인간적인 보스였다.

하지만, '조창용'은 조직의 시대, 칼의 시대, 관리의 시대를 연, 깡패였다.

그는 '마사오'가 되고자, 신화 속 인물이 되고자 하여, 지역에 폭력조직을 도입해 뿌리를 내렸다지만, 신화가 없는,, 즉, 위엄과 자비가 없는 존재였다.

'광자' 누나는 '장원두'를 남자로 만들어준 여인이었지만

'장원두'의 첫사랑은 '나 세희'였다. 어린 날, 버스 운전사가 되겠다던 '장원두'에게 대통령이 되겠다고 말했던 그녀 '세희'.

'마사오'의 처제였던 어물전 집 딸, '세희'는 '조 창용'의 여자가 되고, '원두' 곁에 잠시 머물려 들 때,, '재천'에게 낚여버린다.

장례식장에 서있을 때도 '재천'과 나란히 서있을 때도 여전히 그녀는 아름답고 눈이 부시다.

- 그녀는 십 년 전과는 달리 반말을 하지 않았다. 반말을 하지 않는다는 건, 서로가 적절한 위치에 서서 객관적으로 서로를 관찰할 수 있는 거리를 의미했는데, 스무 살을 조금 넘은 젊은 남녀에게 그 거리만큼 관능적인 거리는 또 없을 것이다. 또 그 거리를 조금씩 줄여나가는 일만큼 아슬아슬하고 흥분되는 일은 없는데 그녀는 현명하게도 미리 거리를 확보해둔 것이었다. 다만 반말을 하지 않는다는 간단한 기술로. 나는 그녀의 기술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그녀의 기술을 돋보이게 하려고 끝까지 반말을 하기로 결심했다. 252

- 아름다운 그녀와 함께 네 사내가 둘러앉아 있다. 그녀는 어느 누구와도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그녀에게는 선천적인 거리 감각이 있는 듯하다. 사내를 애달케 하는,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 ...... 붙잡으려 하면 언제든 도망칠 수 있는 그 거리..... 원할 때는 언제든지 자신의 아름다움과 매력으로 정복할 수 있는 일방적인 거리...... 이 거리를 아는 자가 역사를 변화시켜온 여신족이다. 269-270

이야기는 대격전을 암시하며 흐르다가

평화롭지 않게 평화로운 듯이 마무리되지만

'성석제식' 유머와 해학은 역시나,, 몇 구절에서 입꼬리를 올리며 흐느끼는 웃음을 주체할 수 없게 만든다.

침이라도 흐를 지경으로..

남자들은 이런 신화를 간직하고 살고 싶나 보다.

그래서 수렵시대에는 벌거벗은 채로 떼 지어 몰려다니며 수렵을 떠나고

땅따먹기 종족 간 전쟁은,, 세계대전으로 흘러갔고

뭔가를 위해 투쟁을 해야 했고

정복하고 싶어 했고

투쟁 거리가 없으면,, 스포츠를 죽기 살기로 하거나 보거나 이고

정치판을 싸움판같이 변질시키기도 하고

그래서 레슬링을, 스모를, UFC를,

이소룡을,

깡패 영화를 만들었나 보다.

'성석제' 님의 깡패 이야기 속 깡패들은

이쯤 되니,, 어처구니없게 귀엽고 측은하기까지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