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버 트위스트 2 - 개정판
찰스 디킨스 지음, 윤혜준 옮김 / 창비 / 2007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19세기 영국의 대표적 장편소설가 '찰스 디킨즈'를 처음 읽는 작품이 [올리버 트위스트]가 되었다.

1830년대 구빈원(극빈자들의 반강제 수용소)에서 태어난 '올리버 트위스트'는 태어나자마자 엄마가 죽고, 고아가 된다.

구빈원과 산하 기관인 고아원의 어른들은 너무도 사악하다.

남들 앞에선 고아들을 사랑하고 챙기는 척하지만, 죽지 않을 만큼만 먹이고, 학대한다.

'찰스 디킨즈'는 구빈원 주위의 인간들을 대놓고 비꼰다. 위선으로 가득한 사람들을 야유 가득한 묘사로 전개해나간다.

아홉 살이 된 '올리버 트위스트'는 직업을 찾아 이곳저곳으로 옮겨지지만, 배고픔과 구타를 견디다 못해 런던으로 도망친다.

그곳에서 범죄 소굴 집단에 발을 딛게 되지만, 타고난 선함과 고상한 품성으로 범죄자가 될 수 없었고, 그를 알아봐 주는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련한 '올리버의 전기라'고 작가가 언급하는데, 글의 전개는 마치 무성영화의 나래이션 같이 과장되고, 대놓고 감정에 호소를 한다.

나쁜 사람들은 사악하기가 그지없고

선의의 인간은 선하기가 그지없다.

그래서 결국엔 권선징악의 결말이 난다. 그리고 해피엔딩이다.

간만에 이런 동화적인 요소가 참 좋다. 상처에 불어주던 할머니의 호오~처럼, 마음까지 위안까지 된다는.. 암튼 가끔은 이런 거 필요하다.

나쁜 사람은 너무 나쁘고 좋은 사람은 너무 좋은 이런 동화 같은 구별..

현실의 사람은 나쁜 건지 좋은 건지, 좋은 줄 알고 지냈는데 어느 날 헷갈리고, 아닌 줄 알았는데 오판이기도 해서 ..

콩쥐팥쥐를 읽듯이 읽었는데

스케일을 비교할라치면 콩쥐팥쥐는 너무도 단순하겠지만 ..

1760년대 산업혁명의 주역 영국 사회의 이면에 자리한 산업화의 폐해와 불평등한 계층화, 어린이의 노동과 빈민 구제법에 대한 '찰스 디킨즈'의 신랄한 비판이 이 소설을 사회소설로 자리 잡게 하였다 하겠다.

영화로도 많이 만들어졌다 하는데 나는 이런 영화도 못 보고 자랐네..

튼 중간중간, 이들의 앞날에 대해 살짝씩 언급해 주는 작가의 친절함과

다양한 인간들의 악행과, 어둠 속에서도 어찌할 수 없는 빛나는 성품과 분위기는 타고나기도 한다는 것.. 유전적인 어떤 것?(무시할 수 없는 것이,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이 나더라는..)

'올리버 트위스트'의 역경 극복기보다, '올리버'가 태어나게 된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 그 아버지의 누이동생을 사랑했던 '브라운 로우'씨, 그리고 범죄 현장에 동원되었던 '올리버'를 알아봐 주고 보듬어준 '로즈'와의 관계가 드러나면서, 사랑 없이 태어난 '몽스'가, 악의 축이 되어, '올리버'의 고난을 이끌어 갔지만, 결국엔 용서받아도 맞이하는 결말, 인간에 대한 다양한 생각들도 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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